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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법원의 권위

Posted October. 21, 2010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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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들은 유난히 권위를 좋아한다. 법복의 권위, 법정의 권위, 법원의 권위. 판사라는 직업 명칭부터 헌법과 법원조직법 형사소송법에는 법관으로 통일돼 있다. 판사들은 더 권위 있게 들리는 법관에 애착을 갖는다. 대법관의 명칭에도 비슷한 맥락의 역사가 있었다. 제헌헌법 이래 516군사정변 때까지 대법관으로 불리던 것을 군사정권이 1962년 개헌 때 대법원판사로 격하시켰다. 이 명칭은 1987년 민주화 이후 대법관으로 다시 격상됐다.

영국 판사들은 형사 재판에서 중세 이후의 전통인 흰색 가발을 쓴다.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개인이 아닌 재판관의 존재와 법정의 존엄성을 부각시킨다는 뜻에서다. 우리 판사들이 검정 넥타이와 법복을 착용하고 법정에 들어가는 것도 같은 차원이다. 새파란 젊은 판사보다는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판사가 재판을 진행하는 모습이 훨씬 믿음직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외관을 권위 있게 보이게 하려는 노력도 일정 부분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법복과 법정 법원의 권위는 판사가 아니라 재판을 받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고 김홍섭 판사의 전설 같은 몸가짐은 후배 판사들에게 살아있는 교훈이다. 김 판사는 1961년 사형선고를 받는 피고인들에게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나와 피고인 어느 쪽이 죄인인지 알 수 없다. 이 사람의 능력이 부족해 여러분을 단죄하는 것이니 이해 바란다고 해 심금을 울렸다. 김 판사는 며칠 뒤 쌀 한 말씩을 들고 생계가 어려운 피고인 가족들을 찾아 다녔다. 인간이 인간을 심판한다는 걸 늘 두려워하면서 겸허한 자세를 잃지 않은 그에게는 보이지 않는 권위가 전설처럼 따라다닌다.

겉포장보다 재판의 실질적 내용이 더 중요함은 물론이다. 일부 젊은 판사들의 편향 판결도 사법부 권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판사들의 잘못된 법정 언행도 대법원 국정감사의 도마에 올랐다. 반말과 무시하는 태도는 여전하고 증언을 가로막거나 진술거부권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졸기까지 하는 사례가 많다는 법정 모니터링 결과가 공개됐다. 젊은 판사가 법정에서 나이든 당사자에게 반말을 해 물의를 빚은 적도 있다. 법원의 권위는 판사들이 스스로 챙기기보다 국민의 마음속에서 절로 우러나와야 한다. 육 정 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