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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석유 안보

Posted May. 21, 2010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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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오일쇼크 때의 일이다. 1973년 10월 중동 산유국들은 자원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원유가격을 4배로 올렸다. 당시 국제 금융시장에서 위기설이 나돌던 한국은 중동에 진출한 건설회사들이 보내오는 달러로 버텼다. 그러나 1978년 2차 오일쇼크는 재앙을 몰고 왔다. 1979년 4월 부마(부산마산)사태, 10월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으로 이어진 정국 혼란은 1212 쿠데타와 1980년 5월 광주 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 경제는 침체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중동 오일달러에 취해 2차 오일쇼크에 대비하지 못한 탓이다.

1차 오일쇼크로 경기 침체를 경험한 선진국들은 산유국의 석유 무기화에 대비해 석유 비축에 나섰다. 미국 포드 행정부는 1975년 에너지 정책과 비축법을 제정하고 전략석유를 비축했다. 텍사스주와 루이지애나주의 지하 소금광산 동굴에 저장한 석유 덕분에 미국은 소비량의 60%를 수입에 의존하는데도 2차 오일쇼크를 극복할 수 있었다. 오늘날 국제에너지기구(IEA)가 90일분을 의무적으로 비축하도록 각국에 권고할 정도로 원유 비축은 필수다.

급속한 공업화로 석유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석유 확보 경쟁이 세계 어느 곳보다 치열하다. 2003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석유 소비대국이 된 중국은 중동과 아프리카 산유국을 원조하면서 원유 확보에 혈안이다. 2015년까지 90일분의 전략석유 비축을 목표로 대규모 비축시설을 건설 중이다. 북한은 전적으로 중국의 석유공급에 의존한다. 북한은 주체()니 우리민족끼리니 헛구호를 외치다 결국 중국의 영향력만 키웠다. 우리 땅인 한반도의 북쪽 절반을 김씨왕조체제가 장기 장악하며 경제적으로 몰락했다는 사실이 통탄스럽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부터 석유비축 시설을 꾸준히 늘려왔다. 정부는 그제 원유 650만 배럴을 저장할 수 있는 울산 석유비축기지를 준공했다. 이로써 전국 9개 석유비축기지의 비축유 확보 능력은 총1억4600만 배럴, 우리나라가 158일간 쓸 수 있는 물량이다. 미국(142일치)과 일본(151일치) 등 주요 선진국을 능가한다. 오일쇼크 때 원유를 구하러 산유국에 손을 벌렸던 나라가 30여년 만에 에너지 안보수준을 이만큼 끌어올렸다.

박 영 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