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일식집중 가장 오래돼…내달 15일 폐업 역대 대통령-동교동-상도동계, 재계 총수도 단골 “송해 선생, 식사하다 즉석 ‘전국노래자랑’ 열기도”
서울 종로구 서린동 신성일식에서 문채환 사장이 50년 넘게 일해온 주방에서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1973년 서울시에 영업 등록된 신성일식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일식당으로, 재개발로 인해 오는 5월 폐점을 앞두고 있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광고 로드중
전북 고창에서 상경해 21세에 일식집에서 일을 시작한 청년은 어느덧 75세 노인이 됐다. 1972년 식당에 들어가 2년 뒤 가게를 넘겨받았고,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들과 입씨름하고 정·재계 인사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50년을 넘겼다. 서울 종로구 서린동의 터줏대감 ‘신성일식’ 문채환 사장(75)의 이야기다.
하루하루 세월이 쌓이면서 이곳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일식당이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서울시에 따르면 신성일식은 1973년 일식당으로 등록돼 공식적으로도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일식당이다. 1934년 건물이 들어섰고, 신성일식 이전에도 이 자리에서 일식집이 이어져 온 점을 고려하면 이곳의 일식당 역사는 최소 50년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식당이 지역 재개발로 다음 달 15일 문을 닫는다.
6일 신성일식에서 만난 문 사장은 단골 이야기를 묻자 잠시 생각을 가다듬은 뒤 “이명박, 노무현, 박근혜 전 대통령께서 오셔서 식사한 적이 있다”며 “경호가 강화되면 식사하던 공무원들이 부담스러워 잽싸게 나가던 기억이 있다”고 웃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정세균 전 국무총리, 권노갑 전 의원 등도 단골이다.
광고 로드중
동교동계 핵심 인사였던 한화갑 전 의원은 “단골 정도가 아니라 내 집 드나들 듯이 다녔다”며 “고향에서 홍어가 올라오면 문 사장 가게에 맡겨 놓고 먹을 정도였다”고 했다. 상도동계 좌장이었던 김덕룡 전 의원은 “애피타이저로 나오는 어죽도 내가 ‘속에 밥을 좀 채운 뒤 술을 마시면 더 잘 들어간다’고 조언해 시작된 메뉴”라고 회상했다.
고건 전 국무총리는 지금도 대표 메뉴인 도미 머리 조림을 포장해 갈 정도로 오랜 단골이다. 문 사장은 “고 전 총리가 서울시장 시절 가게를 찾았다가 ‘시에서 보존할 가치가 있는 건물 아니냐’고 농담하신 적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식당이 위치한 건물은 1934년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목조건물이다. 문 사장은 진의종 전 국무총리의 중매로 결혼을 하기도 했다.
신성일식 문채환 사장(왼쪽에서 세 번째)과 김상희 전무(네 번째), 식당 직원들이 2006년 7월 남해에서 올라온 거대한 돗돔과 같이 찍은 사진. 신성일식 제공
대한민국 대표 MC였던 방송인 송해 선생 역시 이곳의 단골이었다. 문 사장은 “송해 어르신이 식사하다가 갑자기 ‘전국노래자랑’이라고 외치더니 손님들을 상대로 즉석 노래자랑을 연 적도 있다”며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도 오셔서 ‘다 나았다’며 소주를 달라고 하셔서 걱정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 등도 이 곳의 숙성회를 좋아했다. 단골이 많은 데에는 대표 메뉴의 힘도 컸다. 두툼한 숙성회와 ‘갈치김치’다. 문 사장은 “생선을 찬물에 담갔다가 손질해 가제에 말아 냉장고에 넣고 핏물을 빼야 꼬들꼬들해진다”고 설명했다. 2011년부터 가게를 돕고 있는 아들 동일 씨(43)는 “갈치김치를 찾는 손님도 많다”며 “통갈치를 먹기 좋게 썰어 넣은 김치를 회와 함께 먹으면 고소함이 더해진다”고 말했다.
광고 로드중
서울 종로구 신성일식 앞에서 김상희 전무(왼쪽부터), 문채원 사장, 아들 문동일 씨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폐점을 앞두고는 매운탕을 담던 쇠 뚝배기가 깨지는 일이 있었다. 동일 씨는 “개업 초기부터 쓰던 뚝배기인데 숟가락에 긁혀 갈라진 것 같다”며 “쇠가 갈라질 때까지 장사를 한 셈”이라고 말했다.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단골들의 아쉬움이 이어지고 있다. 한 전 의원은 “폐점 소식에 곧바로 전화해 예약을 잡았다”고 했다. 신성일식에서 40년 가까이 일한 김상희 전무(58)는 “손님들이 ‘이제 어디 가서 먹느냐’며 전화해 예약을 여러 번 잡고 있다”며 “평생 직장이었는데 건물이 헐리는 걸 보면 눈물이 날 것 같다”고 말했다. 동일 씨는 “아기 때부터 함께한 식당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며 “100%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아버지야말로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평생을 식당과 함께했던 문 사장은 “영원한 집이라고 생각했는데 착잡하다”며 “마지막 날까지는 평소처럼 영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랫동안 함께한 직원들과는 폐점 후 따로 모여 식사를 하며 술 한잔 나눌 생각”이라고 했다.
한재희 기자 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