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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이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두고 ‘피해자 행세’를 시작한 건 지난해 12월 말 국회 청문회 때부터다. 해롤드 로저스 대표는 “국가정보원 지시에 따라 대응했는데, 정부에 협력하지 않는다는 허위 정보가 나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미국 투자사들은 “한국 정부가 쿠팡을 차별 대우한다”며 미 무역대표부(USTR)에 청원을 냈고, 공화당 하원의원 54명은 한국에 항의 서한을 보냈다. 해킹 책임 규명이 끝나기도 전에 사안이 한미 간 문제로 변질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달 1일 미 하원 법사위원회가 공개한 조사 보고서 역시 쿠팡의 일방적 주장이 그대로 담겨 있다. 보고서는 로저스 대표가 국회 청문회에서 욕설을 듣고 거짓말쟁이로 불렸다며 “미국 기업을 얼마나 적대적, 차별적으로 대우하는지 보여줬다”고 단정했다. 또 이재명 대통령 등 한국 정부 고위직들이 국정원 지시로 쿠팡이 중국까지 가 피의자 노트북을 회수한 걸 알고 있으면서도 “국정원은 관여한 바 없다고 거짓말했고, 국회는 로저스 대표가 위증했다며 고발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회에서 질타당한 건 고객 3760만 명의 정보가 유출됐기 때문이지, 쿠팡이 미국 기업이라서가 아니다. 또 대통령실과 국정원은 모두 “노트북 회수 등을 지시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보고서는 그 밖에도 곳곳이 허점투성이다. “쿠팡 차별은 한국 정부가 자국 기업 및 자국 기업과 합작한 중국 기업에 고객을 몰아주려 하기 때문”이라는 로저스 대표의 발언도 그대로 인용됐다. 근거 제시도 없이 미국 일각의 ‘반미 친중 음모론’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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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원 상임위 보고서는 법적, 행정적 효력은 없지만 이후 정부 정책이나 통상 압박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2023년 하원 중국특위가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테무와 쉬인이 관세를 부당하게 회피한다”는 보고서를 낸 후 미국 정부가 저가 소포에 대한 면세 혜택을 폐지한 게 대표적이다. 다만 이번 쿠팡 보고서는 ‘중간 보고서’ 형식이어서 내용이 다소 바뀔 여지는 있다.
▷로저스 대표는 하원에서 “한국 당국은 쿠팡에 적대적이고 보복적”이라고 증언했다. 하지만 쿠팡은 새벽 배송 금지 등 대형마트 규제 정책의 반사이익을 누리며 급성장한 기업이다. 또 쿠팡은 전관을 대거 영입해 오너인 김범석 의장의 국정감사 출석을 막고, 동일인 지정 등 각종 규제도 회피하려 했다. 그러면서 입버릇처럼 “한미동맹의 가교가 되겠다”고 했던 쿠팡이 이제는 양국 갈등의 불씨를 키우고 있다.
장원재 논설위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