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영 오피니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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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오염됐지만, 6·3 지방선거 직후 주말 ‘잠실 참정권 시위’에는 분명 주목할 무언가가 있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는 참가자의 절반이 2030세대였던 것 말이다. 이는 서울시 실시간 도시 데이터로도 확인됐다. 거리로 나온 2030을 두고 신인류의 탄생을 전하듯 환호가 쏟아졌다. “기득권을 향한 앵그리 영의 선전포고”라 했고, 소셜미디어로 연대해 적극 행동하는 시민이라며 ‘소셜 시티즌’으로 명명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보수, 진보 모두 갑자기 2030을 추어올리며 ‘잠실민주화운동’이라고 하는 저의가 의심스러웠다.
어떤 땐 시대정신, 어떤 땐 노답세대?
우리 가슴에 손을 얹고 솔직해지자. 처음 만난 세계인가. 시기와 장소는 달랐지만 어디서 본 듯하지 않은가. 게임사 본사 앞에 트럭을 세우고 확률형 아이템의 불투명한 설계를 따진 이들, 탄핵 촉구 집회에서 촛불 대신 응원봉을 쥐었던 이들, 성과급 산정 기준을 공개하라고 회사를 상대로 집단행동에 나섰던 이들, 북한 여자축구단을 위해 세금 들여 꾸린 ‘공동응원단’이 스포츠 정신을 훼손한다고 반발했던 이들…. 정치권과 기성세대가 자기 입맛대로 이름을 달리 붙였을 뿐이다. 우리 편에 유리하면 시대정신의 상징이고, 불편하면 철없는 ‘노(No)답’ 세대이고.
천의 얼굴을 가진 2030을 이해할 키워드를 굳이 꼽자면 권리다. 권리란 개인이 노력하지 않아도 규칙에 의해 알아서 보장돼야 하는 자격이다. 따라붙는 것이 “룰(규칙)대로 하라”는 요구다. 86세대에겐 실제 그렇게 사느냐와 별개로 옳은 일을 하는 게 중요했다면, 2030세대에겐 그게 무엇이든 일을 옳게 하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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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의 목소리는 기저에선 일관됐다. 약속을 지키라, 바뀐 것은 설명하라, 그 누구도 무임승차는 안 된다…. 그리고 이 세대는 자신의 권리와 이해관계가 침해됐다고 느낄 때 움직였다. 그것도 적극적으로.
다만 정치권은 듣고 싶은 순간에만 그 목소리를 발견한다. 잠실 시위에서도 보수 진영은 현 집권 세력인 86 기득권에 맞선 젊은이들의 저항이라며 “역사 진자의 추가 보수로 되돌아오고 있다”고 손뼉을 치고, 진보 진영은 청년들의 보수화가 우려되던 차에 광장 민주주의의 귀환, 정치 무관심층의 각성이라고 떠든다. 양쪽 모두 다분히 당리당략적이다. 그러다가 2030에게 큰코다친다. “내가 니 걸로 보이세요?”
2030을 소비하는 정치 끝내야 한다
멋대로 투영하지도, 멋대로 이상화하지도 말라. 차라리 솔직하게 인정하는 편이 낫다. “처음부터 정말 나는 너를 모른다”고. 어쩌면 지방선거와 참정권 시위 이후 정치의 첫 과제는 2030에 대한 몰이해를 자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2030의 목소리를 어떻게 지속적으로 수용할지 틀을 만들어야 한다. 어렵지 않다. 들러리나 반짝 구애할 대상으로 소비하지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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