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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한 켤레와 엑셀 보고서에서 농구를 배웠어요”[유재영의 전국깐부자랑]

입력 | 2026-05-23 16:00:00

[37] 무명 시절을 ‘버틴 시간’으로 정상에 오른 남녀 프로농구 소노 손창환-KB스타즈 김완수 감독 우정 이야기




깐부. ‘같은 편’, 나아가 ‘어떤 경우라도 모든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이’라는 의미의 은어(속어)죠. 제아무리 모두 갖춘 인생이라도 건전하게 교감하는 평생의 벗이 없다면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좋은 인간관계는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깐부들 사이에 피어나는 ‘같이의 가치’를 소개합니다.


감독이 되고 비로소 코트의 주인공이 된 남자프로농구(KBL) 소노 손창환 감독(위 사진)과 여자프로농구(WKBL) KB스타즈 김완수 감독. KBL/ WKBL 제공

한국 농구계에서는 흔하지 않은 건국대 출신으로 남녀 프로농구 팀 사령탑을 맡은 손창환 소노 감독(왼쪽)과 김완수 KB스타즈 감독. 대학 1년 선후배인 두 사람은 서로 비슷한 농구 인생 궤적을 회상하며 우정을 나눴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 현역 은퇴 기사도 없었던 두 남자

남자프로농구 SBS(현 정관장)시절 손창환 감독. 프로 무대 4시즌 동안 단 29경기에 출전했다. SBS 유튜브 캡처·KBL 제공


지금 남녀 프로농구판에서 가장 뜨거운 두 지도자인 남자프로농구(KBL) 소노 손창환 감독(50)과 여자프로농구(WKBL) KB스타즈 김완수 감독(49)이 마주 앉자 분위기는 금방 동네 형, 동생 술자리처럼 흘러간다. 코트에서 같은 엄숙함은 없다.

둘은 건국대 농구부 1년 선후배로 주목받지 못한 농구 인생의 결이 닮아도 너무 닮았다. 이른바 오빠부대들이 둘의 이름을 외쳐준 적이 없다. 코트 위 주인공으로 한 번도 호명된 적 없다. 어렵게 프로 구단에 지명을 받았지만 늘 벤치 끝에만 앉아 있었다. 현역 은퇴 소식을 어느 언론에서도 다루지 않았다.

하지만 둘은 농구판 가장 낮은 자리에서 오래 버텼다. 프런트, 홍보팀 직원, 선수 매니저, 전력 분석원, 지원 스태프, 코치…. 코트보다 사무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스포트라이트보다 형광등 불빛 아래 더 오래 있었다. 그 과정을 견딘 시간이 둘을 감독 자리로 이끌었다.

김 감독의 KB스타즈는 지난 시즌 WKBL 챔피언에 올랐다. 손 감독은 올해 감독 첫 시즌에 소노를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누가 뭐래도 이제는 비주류 감독이라 부르긴 어렵다. 그래서 알고 지낸 세월이 더 남다르다.

김 감독은 ‘형’ 손창환의 소노 감독 선임 소식을 들고 묘한 대리만족을 느꼈다고 했다.
“진작 감독이 됐어야 할 형이에요. 솔직히 남자 프로 감독은 연고대 출신 중에서 뽑겠지 했는데 놀랐죠.”
“김 감독. 그래도 난 건국대가 농구계 비주류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어. 어떻게 살아남고 뭘 해야 하는 지가 중요했지.”(손 감독)

손 감독은 오히려 대학 간판에 기댔다면 지금의 손창환은 없었다고 본다. 연줄을 의식했다면 농구계에서 지금처럼 오래 버티지 못했을 거다.


송도고 시절인 1993년 가드로 팀을 이끌며 전국종별농구선수권 대회 우승을 차지한 김완수 감독(5번). 김완수 감독 제공


둘은 고교 시절에는 서로를 잘 몰랐다. 손 감독은 대구 계성고, 김 감독은 인천 송도고 출신이다. 손 감독이 정치외교학과 95학번으로 2학년일 때 김 감독은 체육교육과 96학번 새내기로 건국대에 입학했다. 그 시절 건대 농구부 분위기나 운동 환경은 지금 선수들이 상상하기 힘들다. 숙소엔 세탁기가 없어, 큰 고무 대야에 세제 푼 물을 담고 빨래감을 넣어 발로 밟아 빨았다. 4인 1실 생활이었다. 손 감독은 간식으로 라면을 끓이고, 김 감독은 청소와 빨래하며 선배들 심부름을 했다. 이런 일이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선배들 대하기가 정말 어려울 때였는데, 형이 다 막아줬죠. 하하.”(김 감독)
“기억 나? 내가 ‘우리는 나중에 후배들 괴롭히지 말자’고 했잖아. 그런데 후배들도 우리를 어려워 했을 거야.”

단순한 군기 잡는 문화 얘기가 아니다. 후배들을 조금 더 배려하려 했던 젊은 날의 고민이었다. 이는 훗날 감독이 돼서 선수들을 대하는 방식이 됐다.

● “신발 한 켤레가 내 앞에 오기까지 다 이유가 있다”

“김 감독이 옆에서 봤으니까 알겠지. 나는 실력은커녕 깡밖에 없었던 것 같아.”(손 감독)

손 감독은 비교적 빨리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였다. 고려대나 경희대 같은 강팀과 경기할 때면 실력으론 안 되지만 지지는 않겠다고 악착같이 덤벼들었다. 그러다 코가 세 번 부러졌다. 살아 남기 위해 몸부림쳤을 뿐인데….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습니다.”

어렵게 프로에 갔지만 금세 한계를 알고 다른 길을 준비했다. 그 선택은 인생을 완전히 바꿨다. 2003년 SBS(현 정관장)에서 은퇴하고 프런트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홍보팀이었다.

“그때 세상을 처음 알았다고 할 수 있죠.”

선수 때는 그냥 지나치던 것들이 이제는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선수들은 농구화가 늦게 지급되면 불만부터 터트린다. 업체에서 신발을 보내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거다. 막상 프런트가 되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예산을 짜서 업체와 협의한 뒤 로고를 맞추고 결재받고 다시 수정하고…. 신발 한 켤레를 구입하려 해도 그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이후 광고 영업도 했다. 한때는 ‘영업의 신’ 소리를 들었다. 영업으로 구단에 눌러앉을까 생각도 했다.

“농구 기록지만 볼 줄 알았는데 어느새 조직을 볼 수 있게 되더라고요. 저조차 믿을 수 없었어요.”

김 감독도 군복무를 한 뒤 짧은 프로 선수 생활을 마치고 전자랜드 구단 사무국 스태프와 매니저 생활을 했다. 팀을 지원하는 일이라 하루 통화 100~150통은 기본이었다. 선수들 식사 챙기고 차량 관리하고, 숙소를 보수라도 하면 세밀하게 진행 상황을 관리하고 가구 맞추며 업체 연락에 의전까지 했다.

“처음엔 사람이 할 일이 아닌 줄 알았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농구보다 더 중요한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

“(김)성헌(현 소노 선수지원팀장) 형한테 엑셀 프로그램을 배워서 보고서라는 걸 처음 써 봤을 때를 잊을 수 없어요.”

“김 감독이 감독으로 승승장구하는 이유가 있었네.”(손 감독)

● 공감에서 답을 찾은 우리

손창환 소노 감독(가운데) 지난해 10월 데뷔 첫 승을 올린 뒤 TV 중계석에서 인터뷰를 하다 선수들로부터 축하 물 세례를 받고 있다. KBL 제공

이달 13일 손창환 소노 감독이 2025~2026시즌 KBL 챔피언 결정전에서 KCC에 패해 준우승에 머문 뒤 라커룸에서 선수들에게 한 시즌 힘들게 버텨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있다. 소노TV 캡처


두 사람이 전력 분석원, 매니저 등으로 구단 사무를 보던 시절엔 훗날 프로 팀 감독이 될 수 있을 거거라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 시간은 자신에게 특별한 자산으로 쌓여 있었다. 코트 뒤에서 선수들 불만은 왜 생기는지, 프런트는 왜 쉽게 어떤 사안에 대해 결정하지 못 하는지, 스태프들은 왜 지치는지, 트레이너는 어떤 논리로 선수 몸 상태를 관리하는지 같은 다양한 영역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런 경험 덕분에 선수는 물론 그 뒤의 사람들과 시스템까지 함께 본다. 어떤 일이 터지면 왜 그런 상황이 생기게 됐는지부터 먼저 이해하려 한다.

“김 감독. 나는 작전 시간에 선수들에게 메시지를 잘 던져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팀이 지금 뭘 해야 할지 정확하게 알려주고 그것에 대한 피드백이 이뤄져야 하거든. 감독 화풀이 시간은 아니라고 봐. 감독이 흥분하면 선수들 머리에 남는 건 딱 하나야. ‘감독 화났다.’ 그것만 받아들이곤 코트로 다시 나가게 되지.”(손 감독)

권위나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누르기보다 설득하며 함께 풀어가는 방식에 익숙하다. 선수나 코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에도 여유가 있다.

“더 좋은 생각이 있으면 듣고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해. 거기서 권위를 세우려 하면 감독 인생이 끝날 수도 있다고 봐.”(손 감독)

김 감독은 깊이 공감했다. 화려한 스타 선수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선수들 마음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됐다고 했다. 선수 시절 ‘절대적 에이스’ 자리에 서 본 적이 없었다. 벤치와 주전 사이를 오가며 팀에서 자신의 역할을 고민한 시간이 많았다. 감독이 된 뒤에도 선수들을 무조건 끌고 가야 할 대상이라기보다 함께 방향을 맞춰 가야 할 사람으로 보게 됐다. 그렇다고 원칙이나 기준까지 흔들리는 건 아니다.

“훈련 태도, 책임감, 팀을 위한 기본을 지키는 기준은 안 흔들려야죠.”(김 감독)

김 감독은 그러나 “감독이 기준만 세우고 벽창호처럼 있으면 선수들도 마음을 닫는다”고 했다. KB스타즈 선수들이 언제든 자기 생각을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선수들도 의견을 내고 감독과 부딪히며 답을 찾는 팀을 만들고 싶었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감독 6년 차인 지금도 여전히 “소통은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손 감독은 김 감독에게 큰 자극이었다. 김 감독은 소노가 뛴 KBL 플레이오프전과 챔피언 결정전을 보며 손 감독 리더십을 유심히 지켜봤다.

“형이 선수들 정신을 일깨워주는 말을 많이 했잖아요. 저는 선수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여전히 물음표가 많은데 형은 느낌표로 정리하더라고요. 한 수 배웠어요.”


KB스타즈 핵심 선수 박지수(왼쪽) 허예은(오른쪽)과 함께한 김완수 감독. WKBL 제공

김완수 감독(가운데 쓰러진 사람)이 지난달 26일 2025~2026 시즌 WKBL 챔피언 결정전에서 우승한 뒤 KB스타즈 선수들로부터 격한 축하를 받으며 웃음 짓고 있다. WKBL 제공


김 감독 표현대로라면 자신은 선수들과의 거리, 이야기할 타이밍, 표현 방식을 아직도 고민하는 ‘물음표형 감독’에 가깝다. 반면 손 감독은 중요한 순간 선수들 마음을 흔들 수 있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던질 줄 아는 ‘느낌표형 감독’처럼 보였다는 거다.

김 감독의 고민은 이해할 만하다. KB스타즈에는 여자농구 최고 스타 박지수가 있다. 누구나 부러워할 전력이지만 감독으로서는 가장 예민한 문제이기도 하다.

“전문가들도, 언론도, 주변에서도 다들 ‘지수가 있으니까 무조건 우승하겠지’라는 시선으로 보잖아요.”(김 감독)

팀이 잘 되면 ‘박지수가 있으니까 당연하다’는 말을 듣고, 잘 안 되면 책임은 감독이 모두 져야 한다. 잘해 봐야 본전이다. 한 게임이라도 지면 낭패다. 어쩔 수 없이 팀 운영도 박지수 중심으로 흐를 수 있다. 전술적으로 보면 박지수에게 힘을 실어주는 게 맞다.

그럼에도 김 감독은 거기서 멈추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스타 한 명에게만 의존하는 팀은 결국 한계가 온다. 그는 박지수가 빠졌을 때 다른 선수들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 팀 전체 움직임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계속 고민했다. 그 고민의 시간이 팀 전체를 성장시켰다고 본다. 돌아온 박지수 역시 그 안에서 더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팀 운영을 해야 제가 ‘선수들 덕에 감독 자리까지 왔다’고 어디 가서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함께 움직이는 KB’. 김완수 리더십의 핵심이었다.

● ‘형’이 준 전력 분석 파일

“서로 안고, 끌고 갑시다.” 무명 시절을 오래 버틴 두 감독이 또 한없이 서로 버틸 의지를 다지고 있다.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김 감독에게 손 감독은 단순한 대학 선배 이상의 존재다. 지도자로 살아남을 수 있게 방향을 잡아준 사람에 더 가깝다.

김 감독은 전자랜드 사무국 일을 하다가 한동안 농구를 떠났다. 부모님 사업을 배우며 다른 길을 고민했다. 그러다 한 선배의 추천으로 온양중 농구부 코치를 맡으며 농구판으로 되돌아왔다. 이후 온양여고 농구부를 맡았다. 사무국 일을 하면서 팀 운영을 관리해 본 경험은 있었지만 현장 지도자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그때 손 감독에게 연락을 했다.

“형이 전력 분석 일을 할 때였어요. 남자 농구 전술 패턴 좀 달라고 했죠.”

당시 수많은 경기 영상을 뜯어보고 있던 손 감독은 개의치 않고 여러 아이디어를 던져줬다.

“형님이 주신 걸 진짜 잘 활용했어요.”

온양여고 감독에서 하나은행 코치로 옮길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손 감독을 찾았다. 더 구체적으로 물었다. 대표팀급 지도자들은 어떤 훈련을 하는지, 세계 농구 흐름은 어디로 가는지….

“김 감독은 꼭 자기가 필요할 때만 연락하더라고. 하하.”(손 감독)

농담처럼 말했지만 또 도와줬다. 손 감독은 각국 농구 대표팀 감독들 훈련 방식과 전술 흐름 등을 정리한 자료 파일을 김 감독에게 보내줬다. 김 감독은 그 파일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형님의 도움이 뭔가 답답함을 풀어주는 실마리였어요.”(김 감독)

단순한 고마움 이상의 감정이 담긴 말이다. 서로가 어떤 마음으로 농구판을 견뎌 왔는지 알기 때문에 둘은 평생의 동반자 같다. 스타가 아니었기에 더 오래 봤고, 주인공이 아니었기에 더 많은 사람을 이해할 수 있었고, 선수 시절이 짧았기에 지도자가 되기 위해 더 길게 준비했다. 오래 버틴 사람만이 도착할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손 감독이 웃으며 말한다.

“이제 건국대 동문회에서 아는 척 더 많이 하자. 김 감독.”

한 학번 차이가 더 무섭다는데, 김 감독이 존경을 표한다.

“평생의 롤모델 형님으로 계셔 주세요.”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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