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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을 반납하고 마주한 ‘고슴도치콘’…슴슴한 도파민 디톡스 여정

입력 | 2026-05-17 14:17:00


화려한 퍼포먼스는 물론 박수나 환호성도 없는 콘서트가 열렸다.

15일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연남장에서 밴드 ‘소란’의 보컬 고영배가 이색적인 콘서트 ‘고슴도치콘’을 개최했다. 고슴도치콘이란 ‘고영배의 슴슴한 도파민 중독 치료 콘서트’를 줄인 말. 숏폼과 릴스 같은 자극에서 벗어나 디톡스(detox·해독)의 시간을 가져보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일반 공연과 달리 박수와 환호, 떼창은 금지. 공연 중간마다 명상을 가지기도 했다.

일단 관객들은 입장에 앞서 스마트폰을 비롯한 전자기기를 먼저 제출했다. 대신 도파민 디톡스를 위한 음료로 새콤하고 떫은 뒷맛이 나는 히비스커스차와 명상 뒤 소감을 적기 위한 수첩을 지급 받았다. 공연장 벽면 스크린엔 고영배가 수행자처럼 생활한복을 입은 채 명상하는 영상이 틀어졌고, 죽도를 든 스태프가 돌아다녔다. 실제 명상을 지도하는 스님처럼 규칙을 어기는 관객이 있으면 죽도로 제지하겠다는 의도. 다행히도 이날엔 죽도를 휘두르는 일은 없었다.

고영배가 등장했을 때도 관객들은 큰 호응 없이 담담히 그를 맞이했다. 고영배는 흡족해하며 공연 콘셉트를 설명했다. 원래 웃으면 안되지만, 그의 입담에 어쩔 수 없이 몇 번 관객들의 폭소가 나오긴 했다.

공연은 소란의 대표곡들인 ‘벛꽃이 내린다’와 ‘목소리’로 시작됐다. 고영배는 “도파민 중독 치료를 어떻게 할지 고민했는데, 지루한 걸 보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는 걸 느꼈다”며 고슴도치와 도파민에 대한 수필을 낭독했다. 가시를 세우고 경계하는 고슴도치로부터 마음을 얻어내는 과정을 묘사한 것으로 기다림의 미학을 성찰하는 글이었다. 낭독 전엔 “제미나이로 썼음을 미리 밝힌다”고 말해 웃음이 터졌다.

이후 ‘기적’과 ‘셔터’ 등을 연이어 부르며 차분한 노래에서 점차 활기찬 노래로 분위기를 띄우기도 했다. 하지만 중간중간에 배치한 명상 시간 덕분에 음악을 더 깊이 감상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날 일일 게스트로는 고영배와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밴드 ‘데이브레이크’의 보컬 이원석도 깜짝 출연했다. 그는 고영배에게 쓴 정과 위트가 담긴 편지 낭독한 뒤 지친 하루를 위로하는 ‘오늘 밤은 평화롭게’를 불렀다.

마지막 곡은 ‘잊어야 해’였다. 고영배는 마이크 없이 곡을 부르며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미련을 진솔하게 표현했다. 노래가 끝난 뒤 영상에서 나왔던 생활한복으로 갈아입은 고영배와 합장하는 포즈를 취하며 기념촬영하는 것으로 공연은 마무리됐다. 기존 콘서트와 달라 낯설면서도, 말초적 쾌락에서 벗어나 듣는 즐거움을 다시금 새길 수 있던 시간이었다.

김도연 기자 rep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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