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민 정책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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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섬이 가장 많은 지역인 나가사키현은 1970년부터 ‘지역의사제’를 도입했다. 이 제도로 입학해 학비와 생활비 등 6년간 약 9000만 원을 지원받은 나가사키대 의대 학생들은 의사 면허 취득 후 9년간 지역 내 의료 취약지에서 근무해야 한다. 9년 중 절반은 의료 접근성이 더 떨어지는 낙도에 배치된다. 의사 부족에 시달렸던 나가사키현이 971개 섬의 의료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이유다.
지역의사제의 성공은 의무 복무 후 얼마나 많은 의사가 지역에 남느냐에 달려 있다. 의무 복무만 마치고 지역을 떠나면 제도 도입 취지가 무색해지기 때문이다. 지역의료에 애착을 갖는 의사를 길러내기 위해 나가사키대 의대생은 전원이 5학년 때 일주일간 낙도 실습을 하고, 6학년은 한 달간 섬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한다. 지역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다양한 환자 경험을 쌓기 위해서다.
국토가 넓어 의료 취약지가 많은 호주도 촘촘한 지역의사 양성 체계를 갖췄다. 호주 의대는 지역의사를 키우기 위해 전체 정원의 25%를 농촌 출신 학생으로 선발한다. 각 소도시의 거점 병원을 중심으로 의대생이 1년 이상 농촌에서 임상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지역 임상 학교’가 핵심 역할을 한다. 특히 전체 임상 실습의 50% 이상을 시골에서 이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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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입시에서 490명을 지역의사제로 선발하는 한국은 어떨까. 신입생 입학까지 열 달밖에 남지 않았지만 현장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다’는 걱정이 가득하다. 경북의 한 의대 교수는 “일반 전형 학생처럼 가르치려니 지역의사제 취지가 무색해지고, 별도 커리큘럼을 만들자니 인력과 인프라 여력이 없다”고 토로했다.
2년간의 의정 갈등을 거쳐 의대 증원에 성공한 정부도 지역의사제로 선발한 학생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수련할지에 관해선 구체적인 밑그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주무 부처가 어디인지도 불확실하다. 일각에선 “보건복지부는 ‘의대 교육은 교육부 주무’라고 주장하고, 교육부는 지역의사제는 복지부 소관이라 관심이 없다”는 말까지 들린다.
이대로라면 지역의사제의 미래는 뻔하다. 의무 복무 뒤 일부는 지역에 남겠지만 대다수는 정주 여건이 좋은 수도권이나 대도시로 떠날 가능성이 높다. 대만의 ‘공비(公費) 의사’가 그런 사례다. 지역의사 양성을 위한 별도의 교육과 수련 과정이 없다 보니 공비 장학생이 의무 복무 후 취약지에 남는 비율은 16%에 불과하다.
당장 지역의사제로 뽑힌 학생을 위한 지역별 교육·수련 시스템부터 갖춰야 한다. 지역의사제 전담 교원을 확보하고, 학생들이 임상 실습을 하고 수련받을 의료기관도 촘촘히 연계해야 한다. 지역의사는 개인의 사명감만으론 결코 길러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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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민 정책사회부 차장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