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출신 중도진보 성향 레오 14세… ‘세계 최고 권력자’와 충돌 “예수, 전쟁 일으킨 사람 기도 안들어” ‘신의 뜻’이라는 트럼프 직설적 비판… 추기경 때도 ‘反이민 정책’ 저격 트럼프 “난 교황과 의견이 다르다”… 중간선거앞 보수 가톨릭 이탈 우려
레오 14세 교황이 11일(현지 시간) 바티칸에서 전쟁 반대와 평화를 강조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최초의 미국 출신 교황인 그는 올 2월 28일 이란 전쟁 발발 후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강하게 대립하고 있다. 바티칸=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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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한 줌 폭군’들에 의해 황폐화되고 있다(The world is being ravaged by a handful of tyrants).”
지난해 5월 가톨릭 2000년 역사상 첫 미국 출신 교황으로 즉위한 레오 14세 교황이 이란 전쟁 발발 후 강도 높은 반전(反戰) 발언을 이어가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전쟁은 신(神)의 뜻’이라며 정당화하려는 것을 거듭 질타하고 있다. 특히 16일(현지 시간) 서아프리카 카메룬의 바멘다를 찾아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듯한 ‘폭군’ 발언까지 내놨다. 당초 중도 진보 성향으로 알려졌던 레오 14세가 교황 특유의 비유, 수사적 어법 대신 예상보다 훨씬 직설적인 표현으로 일관한다는 평가다.
‘세계 최고 권력자’인 미국 대통령과 ‘세계 14억 명 가톨릭교도 수장’인 교황의 충돌은 정교분리 원칙이 확립된 21세기에 보기 드문 장면이다.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5400만여 명 가톨릭교도 유권자를 의식해야 하는 처지다. 교황 또한 세속에 지나치게 관여한다는 일각의 우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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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의 인생 역정을 살펴보면 이 경향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는 평가도 있다. 그는 1955년 미국 야당 민주당의 텃밭으로 꼽히는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계 이민자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당시 이름은 로버트 프리보스트.
그는 1977년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에 입회하며 사제의 길을 걸었다. 병자와 약자에 대한 배려, 나눔, 공동 소유 등을 강조하는 수도회다. 또 1985∼1988년, 1992∼1999년, 2014∼2023년 남미 페루 빈민가에서 사목했다. 2015년 페루 시민권까지 획득했다. 2023년 9월 추기경에 오른 후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반(反)이민 정책을 비판하는 게시물을 종종 X에 리트윗했다.
이런 레오 14세에 맞서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을 교황이 허용한다면 나는 교황과 의견이 다르다. 교황이 성명을 발표했는데 이란이 핵무기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핵 반대’를 줄곧 외친 레오 14세의 권위를 깎아내리려 ‘허위 뉴스’로 공격하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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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판 아비뇽 유수” 논란도
양측은 지난해 말부터 미국이 카리브해의 중남미 마약선들을 격침하고 올 1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축출할 때도 대립했다. 레오 14세는 당시 연설에서 “한 국가가 무력을 사용해 타국 국경을 침범하는 것을 금지해 온 규범이 훼손됐다”고 비판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엘브리지 콜비 미국 국방차관은 크리스토프 피에르 주미국 바티칸 대사에게 “미국 편에 서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당시 배석했던 미국 관계자가 14세기 ‘아비뇽 유수’ 사건까지 거론했다고 미국 독립 매체 프리프레스가 전했다.
아비뇽 유수는 1309∼1378년 이탈리아 로마에 있던 교황청이 프랑스 아비뇽으로 이전했던 시기를 일컫는 용어다. 교황권이 세속 권력에 굴복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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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교황의 발언 또한 미국 정치에 개입하려는 의도로 해석돼 정교분리 위배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16일 분석했다. 지난달 NBC 뉴스가 미국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레오 14세의 호감도는 42%로 트럼프 대통령(41%)과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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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지 기자 jej@donga.com
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