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규제 속 현금 많아야 매입 가능
매수자들 “주담대도 못받아” 외면
강남, 호가 수억 낮춰도 거래 안돼
세입자에 위로금 주고 내보내기도
지난 8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타워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2026.4.8 서울=뉴스1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에 집을 갖고 있는 다주택자 김모 씨는 자신의 집을 처분하기 위해 최근 위로금 1000만 원을 주고 세입자를 내보냈다. 매매가 9억5000만 원짜리 집에 전세보증금 4억 원을 끼고 있어 이미 주택담보인정비율(LTV) 40%를 채워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는 상황. 전세 계약이 끝나고 새 집주인이 실제 입주할 때 받을 수 있는 대출은 전세퇴거자금대출 1억 원뿐이다. 지난해 6·27 대출규제에서 세입자 보증금을 돌려주기 위한 생활안정자금 대출 한도를 1억 원으로 묶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 집을 사기 위해 현금 8억5000만 원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다 보니 집이 팔리지 않는 것이다. 김 씨는 “이 지역은 젊은층이 많이 찾다 보니 대출 없이 현금만으로 집을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세입자를 내보내기 전에는 거의 문의가 없다가 세입자를 내보내자마자 집이 바로 팔렸다”고 말했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시행(5월 10일)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정부가 ‘일시적 갭투자’를 허용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출규제는 이전과 그대로여서 집을 팔지 못하는 사례가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양도세 중과 시행 전까지 토지거래 허가 신청만 하더라도 중과가 되지 않도록 규정을 추가로 완화했지만 시장에 매물이 크게 늘어나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14일 부동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물은 이재명 대통령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시행 방침을 밝히기 직전인 1월 22일 5만6216건에서 이날 기준 7만5414건으로 34.1% 증가했다. 다만 이는 지난달 8만80건으로 정점을 찍은 뒤 5000건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지난주 정부가 5월 9일까지 토지거래 허가 신청만 해도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받지 않도록 규정을 완화했지만 매물이 늘어나는 효과가 크지 않은 것이다. 시장에서는 팔릴 수 있는 매물은 팔렸고, 팔리기 어려운 매물 중 일부를 집주인들이 거둬들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의 우장산힐스테이트에는 세입자 만기가 2027년 9월인 전용면적 59㎡가 호가보다 1억 원 낮춘 13억5000만 원에 나와 있다. 직전 거래가(14억 원)보다 저렴하지만 거래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인근에서 영업하는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전세를 낀 매물은 사실상 대출이 안 되는데, 집주인이 직접 거주하거나 빈집이어서 대출이 가능한 매물도 많다 보니 가격을 낮춰도 거래가 잘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전월세 매물 자체가 씨가 마른 데다 가격도 높아져 세입자들이 위로금에도 선뜻 집을 비우기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 강남구의 한 공인중개사무소에서는 “전세를 낀 매물은 호가보다 3억 원씩 낮춰도 팔리지 않는다”며 “전월세 시세가 워낙 올라 세입자를 내보내려면 집주인이 4000만 원 정도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은 “임대사업자가 아닌 다주택자 매물은 5월 초가 되면 안 팔리더라도 거둬들일 가능성이 높아 전체적으로 매물 공급이 줄어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윤명진 기자 mjligh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