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용 칼럼니스트
이어진 질문 시간. 학생들은 질문도 많았다. 예정된 질문 시간 30분을 넘겨 20분쯤 더 했을 정도였다. 질문의 특징도 확실했다. 일단 본인들이 현재 실습 중이어서인지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인터뷰를 하는데 대답하는 사람 말을 얼마나 믿어야 하나’ 같은 것들이다. 좋은 일이다. 구체적인 질문은 좋은 질문이다. 아울러 상당히 많은 질문이 양자택일형이었다. 사용자 의견과 디자이너의 의도 중에서, 대답하는 이의 목소리와 독자에게 보내려는 메시지 중에서 어디에 중점을 두면 좋을지 같은 질문이 많았다.
나는 계속 비슷한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에서의 선택이 우리 자신이다. 사용자 의견과 디자이너의 의도의 합이 100이라고 했을 때, 둘을 얼마나 배합하는가. 대답하는 이의 목소리가 빨간색이고 독자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노란색이라면, 결과물의 색은 얼마나 빨갛거나 노래야 하는가. 그런 정답은 이 자리에서 그 젊은이들을 처음 만난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이 아니다. 디자인이나 내가 하는 에디터 일 등의 정의와 진입장벽이 사라지는 추세여도, 나는 프로 디자이너가 아니니까. 내가 그들에게 ‘나도 다 알아’라는 양 굴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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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다 못 한 답을 여기에라도 적어 둔다. 둘 중 하나를 고르는 질문을 만들었다면 이미 두 가지 키워드로 구성된 생각의 구조를 만드는 데까지 도달한 셈이다. 그 사이에서의 답이 자기 자신일 테고, 영 답이 안 나온다면 생각의 구조 자체를 의심해 봐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디자인이든 뭐든 내 결정에 궁극적 답을 주는 건 교수님의 학점 같은 눈앞의 평가도 아니고, 자기 자신도 아니다. 시간이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과 의지가 녹아 있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 여러 가지가 또렷해진다.
나도 학생들에게 궁금한 게 있었다. 나는 이런 자리에 설 때 내용만큼 재미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용을 말하는 사이사이 나름 재미있게 해 보려 했으나, 학생들은 그저 조용하고 진지했다. ‘역시 영 재미가 없었던 걸까…?’라고 적다 보니 깨달았다. 역시 답은 질문 속에 있었다. 재미없었구나. 질문이 이어진다. 내 농담이 그들에게는 통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내 농담 촉이 무뎠을까. 이 답도 이 둘 중 어딘가에 있겠지. 갈 길이 멀다.
박찬용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