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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은행-공기관 줄줄이… 노동위, 하청노조 손 들어줘

입력 | 2026-04-10 04:30:00

노란봉투법 한달, 노조 사실상 완승
쿠팡CLS 등 4곳은 분리교섭 첫 기각
원청기업, 재심 신청-소송 제기 가능
현장선 “소송 1, 2년 걸려 비현실적”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시행 첫날인 지난달 10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투쟁 선포대화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법 시행 이후 한 달간 1000건에 가까운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가 쏟아졌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시행 한 달을 하루 앞두고 KB국민은행, 하나은행 등 민간 기업들이 무더기로 복수의 하청 노조와 각각 개별교섭을 해야 한다는 노동위원회의 판단이 나왔다. 경영계가 우려한 ‘쪼개기 교섭’이 현실화되면서 기업들이 1년 내내 노조와 씨름하며 노사 불안이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이 법 시행 첫날 “대립과 갈등 대신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고 했지만 노사 현장은 대화보다는 분쟁이 심해지는 양상이다.

● 노란봉투법 시행 ‘대화’보다 ‘분쟁’으로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9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산하 콜센터지부가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 KB국민카드를 상대로 낸 교섭 단위 분리 신청을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여러 개의 하청 노조가 각 은행, 카드사와 개별로 교섭을 진행할 수 있다며 노조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또 서울지방노동위는 민노총 전국택배노조가 쿠팡의 물류배송 자회사인 쿠팡CLS를 상대로 제기한 사안에서 쿠팡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면서도 교섭 단위 분리 신청은 기각했다. 노동위는 에쓰오일, SK에너지, 고려아연에 대해서도 사용자성을 인정하면서 분리 교섭을 기각했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분리 교섭이 기각된 건 처음이다. 다만 여전히 분리 교섭을 인정한 곳이 더 많다.

노동위는 주로 안전 관리나 인력 배치 등에 대한 원청 기업의 구조적 개입이 확인됐을 경우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경영계에서는 하청 노조들이 산업안전 문제를 앞세워 교섭권을 확보한 뒤 이를 발판 삼아 임금과 상여금, 복지 등 근로 조건 전반으로 협상 범위를 넓혀 갈 것으로 보고 있다.

지방노동위 결정에 불복할 경우 원청 사업자들은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하거나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대부분 눈치를 보는 분위기다. 한 기업 관계자는 “소송까지 가면 최소 1, 2년이 걸릴 텐데 힘을 뺄 필요가 있나 싶다”고 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노사 양측의 균형을 맞추지 못한 법 시행으로 더 많은 분쟁과 기업들의 해외 이탈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 ‘모범 사용자’ 되겠다던 공공 부문, 약한 고리로

정부가 ‘모범 사용자’가 되겠다고 거듭 강조한 데다 노동위가 잇달아 공공기관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면서 공공 부문도 노란봉투법의 ‘약한 고리’로 떠올랐다. 하청 노조의 교섭 요구를 받은 원청 사업장 368곳 가운데 공공 부문은 153곳(41.5%)에 달한다.

노동위는 2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한국자산관리공사 등을 시작으로 9일 한국전력공사까지 총 9곳의 공공기관을 두고 하청 노조와 직접 교섭해야 하는 원청 사용자라는 판단을 내렸다. 고용노동부 산하 자문기구인 ‘단체교섭 판단지원위원회’는 국세청에 대해서도 하청 노조의 사용자라고 결론 내렸다. 중앙정부 부처의 사용자성이 인정된 첫 번째 사례다.

공공기관의 사용자성을 받아낸 하청 노조들은 기획예산처, 기후에너지환경부, 보건복지부 등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교섭 공세를 높이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공공 부문의 사용자성을 두고 “노사 간 개별교섭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며 부인해 왔는데, 노동위가 정반대의 결론을 내리면서 공공기관들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임금과 복리후생 조건은 물론이고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라는 요구까지 받고 있다”고 했다.

권혁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모호한 법 규정을 둘러싸고 노사 양측의 소모적인 갈등과 비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의 후속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이문수 기자 doorwat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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