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혁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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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확산되던 2008년 9월 12일. 정부 고위 인사가 “(김 위원장이) 스스로 양치질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했다”라는 첩보를 흘렸다. 실제로 뇌출혈로 위독한 상태였던 김정일은 건강을 회복해 3년 뒤인 2011년 12월 사망했다. 옆에서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김정일의 동향이 공개된 것을 두고 고급 정보원을 숙청 위험에 빠뜨렸다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역으로 북한의 최고 기밀을 파악할 수 있을 만큼 고급 휴민트(HUMINT·인적 정보)가 존재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최근 국가정보원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딸 주애를 사실상 후계자로 지목했다. 이종석 국정원장은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국정원이 주애에 대해 “후계자 내정 단계”라고 판단한 데 대한 근거를 묻는 질문에 “단순하게 정황 정도의 판단이 아니고 신빙성 있는 첩보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이 원장의 설명은 주애가 후계자로 내정됐다는 판단의 배경에 휴민트나 도청 등 복수의 첩보가 있다는 뜻으로 보인다. 민감할 수밖에 없는 북한 지도자의 동향이나 후계 구도와 관련된 분석에 고급 휴민트를 통한 교차 검증은 필수다. 30년간 국정원에서 근무한 정일천 전 국정원 국장은 과거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미 오래전에 김정은이 군 고위급 장교들 앞에서 ‘너희들이 앞으로 충성해야 할 사람’이라며 주애를 후계자처럼 소개했다는 첩보가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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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공작원 등으로 불리는 휴민트는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기 때문에 리스크가 크다. 자칫 정보원의 신분이 노출되면 수년간 공들여 쌓아둔 네트워크가 하루아침에 무너지거나 역공작에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인공위성과 정찰기 등 첨단 장비를 통한 테킨트(TECHINT·기술정보), 북한 내부통신을 감청해 얻는 시긴트(SIGINT·신호정보)의 높아지는 활용도에도 ‘살아 있는 정보’인 휴민트의 중요성은 여전히 높다.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작전에서도 오랜 시간 축적된 정보망과 휴민트는 표적을 정확히 찾아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한반도 평화 공존 프로세스를 추진 중인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외교부와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인내심 있는 대북 정책을 강조하면서도 남북관계에 대해 “바늘구멍 하나도 여지가 없다”고 했다. 바늘구멍을 찾는 일은 정보력에서 시작된다. 아무리 기술이 진보해도 핵심 정보의 마지막 퍼즐은 결국 ‘사람’에게 달려 있다.
권오혁 정치부 기자 hy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