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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런’ 취급 받던 약사, 32살에 ADHD 진단…“왜 괴로웠는지 알게 돼”

입력 | 2026-03-10 16:29:00



현직 약사이자 만화가인 비스카차 씨는 이제 막 ADHD 진단을 받은 이들에게 “의사와 계속 커뮤니케이션을 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약을 먹으며 어떤 증상이 줄어드는지 보고 질병을 이해하는 과정 자체가 일종의 치료”라고 강조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나도 ADHD인 것 같아!”
“요즘 ADHD 아닌 사람도 있나?”


현직 약사가 그린 웹툰 ‘이 땅에 ADHD로 태어나’엔 성인 ADH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를 놓고 이뤄지는 대화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결론은 이렇게 난다. “하지만 이 중 실제로 ADHD 진단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요즘 ADHD만큼 자주 언급되면서도, 그만큼 오해 많은 질환이 또 있을까. ADHD 진단을 받은 당사자이기도 한 작가는 자신의 충동성과 조급함을 조율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웹툰에 담았다. 해당 작품은 X(옛 트위터)에서 누적 40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지난달 웹툰과 동명 제목으로 책을 출간한 만화가 비스카차 씨(36)를 8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남미에 서식하는 설치류 ‘비스카차’를 필명으로 쓰는 그는 “신상보다는 책이 더 조명 받길 바라는 마음에서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비스카차 씨는 32세 때 ADHD 진단을 받았다. 어릴 적부터 자신을 짓눌러 온 정체 모를 괴로움의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됐다. 그는 11살부터 17살 무렵까지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고 한다. 상담도 계속 받았지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2007년부터 블로그에 일기를 쓰며 ‘내가 왜 괴로운가’를 자문하기 시작했다. 그는 “돌이켜보면 결국 ADHD 진단으로 가는 여정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약대를 졸업한 그는 이른바 ‘빅5’ 병원에서 근무했다. 세 번째로 배치된 부서는 암센터. 약사들 사이에서도 가장 힘들기로 악명 높은 곳이다. 항암제는 대부분 액체라 한 번 섞이면 뭐가 얼마나 들어갔는지 다시 확인하기 어렵다. 조제 단계에서 실수가 나지 않도록 매우 세밀하게 확인하고 기록해야 한다.

문제는 업무 속도였다. 긴장 속에서 실수를 피하려다 보니 일은 점점 느려졌고, 바쁜 업무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결국 ‘빌런’ 취급을 받았고 직장 내 괴롭힘까지 겪었다. 그는 “병원을 그만둔 뒤 정신과를 찾았고 ADHD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30대에 받은 ADHD 진단은 오히려 그에게 일종의 해방구였다. ‘내가 그동안 이래서 이랬구나’ 하고 자신을 다시 이해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 비스카차 씨는 “그때부터 ADHD 관련 최신 논문과 단행본을 찾아 읽으며 증상을 파고들었다”고.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만화로 그리기 시작했다. 청소년 시절 장래희망란에 늘 ‘화가’를 적었을 정도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작가가 투영된 웹툰 주인공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다시 들여다본다. 유달리 글씨 따라쓰기를 어려워했던 초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늘 산만하다는 말을 들으며 자라온 기억까지 하나씩 꺼내놓는다. 자신의 ADHD를 설명하려다 상대방 역시 나름의 결핍과 어려움을 안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도 담겼다.

현재 그는 경기도에 있는 한 약국에서 홀로 근무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ADHD 메타 인생’이란 후속작도 연재 중이다. 독자들에게 받는 메시지는 큰 힘이 된다. 그는 “ADHD인지 몰랐는데 만화를 본 뒤 진단 받고 치료도 시작했단 메시지를 받을 때 가장 뿌듯하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를 “산만해서 약사도 하고 만화가도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ADHD 때문에 뭔가를 못 한다기보다, ADHD이기에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다. 최근엔 약사가 주인공인 판타지 장편 웹툰도 구상 중이다.

“마법의 약국에 환자들이 자기가 모르는 병을 가지고 와요. 약을 주면서 환자도 스스로 병을 깨닫고 치료하게 되는 이야기예요. 아직 더 구상해야 하긴 하지만요. ADHD라서 아이디어는 많아요.(웃음)”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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