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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31〉

입력 | 2026-02-27 23:06:00


말아, 다락같은 말아,

너는 점잔도 하다마는

너는 왜 그리 슬퍼 뵈니?

말아, 사람 편인 말아.

검정콩 푸렁콩을 주마.


이 말은 누가 난 줄도 모르고

밤이면 먼 데 달을 보며 잔다.



―정지용(1902∼1950)




사모하는 스승이 전북 군산의 작은 서점에서 정지용 시를 톺아보는 강의를 한다는 소식에 참석했다. 겨울 막바지라 바람 끝이 순했고, 지용의 많은 시 중 유독 이 시에 눈길이 머물렀다. 말에 대해 무엇도 이야기해주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시. 화자는 말의 형상을 묘사하지도, 말과의 경험을 이야기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를 부르고, 말을 건넬 뿐이다. “말아, 다락같은 말아,/너는 점잔도 하다마는/너는 왜 그리 슬퍼 뵈니?” 앞의 세 줄만 소리 내어 읽어보라. 그러면 시의 작은 비밀 하나가 열릴지 모른다. 시는 무언가를 ‘제대로’ 호명할 때, 얼굴을 보여준다. 시는 누군가를 간곡히 부르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정지용은 걷거나 달리는 말을 그리지 않는다. 사람을 태우는 말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말한다. 다락같은 말, 점잔은 말, 슬퍼 뵈는 말을 본다. “검정콩 푸렁콩”을 먹는 말을 자꾸 부르기만 한다. 2연은 1연과 다르다. 말에게서 거리를 둔 화자가 이쪽을 보며 혼잣말한다. 이 말은 자기를 낳은 어미도 모른 채 “밤이면 먼 데 달을 보며” 잔다고. 쓸쓸함이 돌연 호수처럼 퍼지는 것 같지 않은가? 1927년에 발표된 이 시는 태어난 지 100년이 되었다. 100년이란 시간을 지나오며 조금도 훼손되지 않고 고유한 말맛과 정서를 전달하는 시라니! 



박연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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