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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대신 세포로 신약 실험”… 새 길 열어 100억 모은 공학자[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입력 | 2026-02-21 01:40:00

오가노이드 배양 자동화 개척하는 셀로이드
나노 막 제조-성형 기술로 3차원 세포 배양 자동화 ‘선두’
신장-간-심장-췌장 등 수율 탁월… 인체 세포로 동물실험 대체 목표
성모병원서 재생의료와 손잡고, 막 움트는 글로벌 표준 노려



김동성 셀로이드 대표이사가 지난달 9일 서울 서초구 자사 연구소에서 3차원 배양 자동화 시스템을 든 채 미니 장기들이 잘 배양된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해당 시스템에서 자란 미니 장기들은 혈관이나 조직 기능이 기존 방식에 비해 잘 성숙하고, 개체간 편차도 적다.


“처음엔 이 멤브레인(막)으로 물을 더 잘 거르는 필터를 만들지, 기능성 섬유를 만들지 우리도 몰랐다. 다만 ‘물질이 잘 통하면서도 튼튼한 막’을 만드는 기술 하나는 확실히 있었다.” 나노 생산 기술 기계공학자 김동성 셀로이드 대표이사(49·포스텍 교수)는 사업의 출발점을 이렇게 말했다. 김 대표가 처음 붙잡았던 것은 세포가 아니라 나노 섬유 멤브레인, 더 정확히는 미세한 섬유를 엮어 만든 물질투과성 막이었다. 이 기술은 2016년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에 선정됐다.

방향을 정해준 건 협업을 하던 바이오 연구실의 현실이었다. 동물 유래 젤인 매트리겔에 세포를 섞어 오가노이드(장기유사체 혹은 미니 장기)를 키우면 크기와 성숙도는 제각각이고 작업자가 누구냐에 따라 배양의 결과가 달랐다. 지난달 9일 서울 서초구 연구실에서 만난 김 대표는 “해결하면 동물실험을 대체할 오가노이드 생산을 앞당길 수 있는 도전할 만한 과제였다”고 했다.

● 세상에 없던 숨 쉬는 ‘우물’

김동성 셀로이드 대표이사와 임직원들이 작년 6월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바이오USA 전시회에서 자사 3차원 배양 시스템의 성능을 설명하고 있다. 셀로이드 제공

셀로이드가 해결하려는 문제는 단순하면서도 까다롭다. 오가노이드 자체는 이미 전 세계 연구실에 널려 있다. 그런데 고품질 오가노이드들을 균일하게 대량 생산하는 기술은 없다. 세포들이 분화 및 자기 조직화 과정을 거치며 입체적으로 자라도록 하는 3차원(3D) 배양은 하이드로겔(물이 가득 찬 고분자 그물망) 혹은 바닥이 막혀 있는 마이크로웰(작은 우물형 용기)을 쓰는 방식이 대부분인데, 이렇게 배양된 오가노이드들은 크기·성숙도 편차가 크다.

김 대표가 먼저 내놓은 답은 네스트웰(NestWell)이라는 제품이다. 나노섬유 멤브레인으로 만든 물질투과성 마이크로웰이다. 세포는 빠져나갈 수 없지만 산소와 영양분, 노폐물이 오갈 수 있는 미세 구멍이 뚫려 있다. 세포가 3차원으로 응집하면서도 질식하지 않는다. 여기에 김 대표의 전공인 나노 생산 정밀가공 기술이 붙는다. 웰(우물)의 입구 지름을 각각 500, 800, 2000 마이크로미터(㎛)로 설계해 오가노이드 크기 자체를 설계 값에 맞춰 찍어내듯 만들도록 돕는다.

신장의 미니 장기 비교 모습. 오른쪽이 셀로이드가 배양한 것으로 혈관이나 미세 조직이 훨씬 세분화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셀로이드 제공 

이 구조는 2024년 세계적인 종합 과학 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실린 신장(콩팥) 오가노이드 연구 논문에서 성능을 증명했다. 사람 유도만능줄기세포(hiPSC)로 만든 신장 오가노이드가 네스트웰에서 탁월하게 잘 자랐다. 사람 신장에 있는 세포 종류 비율과 콩팥 단위(네프론) 구조가 비슷하게 재현됐다. 각 세포가 제 역할을 할 만큼 성숙한 상태까지 자란 것이다. 웰 크기를 바꾸면 오가노이드 크기도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결과도 나왔다. 논문 속 형광사진에 가지런히 배열된 미니 신장들은 김 대표의 말처럼 ‘공장에서 찍어낸 미니 장기’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 3D 배양 자동화 시스템까지 만들어

김 대표가 내놓은 두 번째 답은 오가네스트(OrgaNest)라는 제품이다. 관류(perfusion) 기반 자동 배양 시스템이다. 카트리지 안에 네스트웰을 장착하고, 1mm 안팎의 미세 튜브를 통해 배양액을 연속 주입·배출하며 장기간 자동으로 돌리는 구조다. 연구원이 수동으로 플레이트를 꺼내 피펫 작업으로 배양액을 갈아주던 일을 폐쇄 회로 속 모터와 센서가 대신한다. 오염 위험과 세포 유실을 줄이고, 작업자 편차를 없앴다.

기존 방식과의 차이는 숫자로 드러난다. 간(liver) 오가노이드의 경우 12일간 진행되는 배양 작업에서 기존 매트리겔 방식은 유효 수율이 10∼25%인데 반해 네스트웰과 오가네스트를 쓰면 90%까지 올라간다. 이런 오가노이드 생산 수율 개선은 생산 단가 절감으로 직결된다. 김 대표는 “간 오가노이드의 경우 약 62%, 췌장은 52% 단가를 아낄 수 있다”고 했다.

3D 오가노이드 배양 자동화 플랫폼 개발은 글로벌 장비사와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점점 늘고 있다. 하지만 물질이 통과하는 막이 깔린 마이크로웰과 폐쇄형 관류 배양을 결합해 고균일 오가노이드를 대량 생산하는 상용 솔루션은 셀로이드가 처음이다.

● 논문으로만 끝낼 순 없어 창업

셀로이드는 2021년 5월 18일, 포스텍 재료가공 및 통합 바이오 시스템 연구실에서 스핀오프한 회사다. 김 대표는 포스텍 기계공학과·융합대학원(의과학전공) 무은재 석좌교수이자 차세대과학기술한림원 회원이다. 나노섬유 멤브레인과 같은 나노 소재 및 성형 기술을 바이오헬스 시스템과 엮어온 공학자다.

나노섬유 멤브레인과 물질투과성 마이크로웰 성형 기술이라는 원천을 확보한 뒤,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곳으로 오가노이드·세포치료제 공정을 선택한 것이다. 김 대표는 “논문 몇 편으로 끝낼 게 아니라 아예 시장의 표준 공정을 만들자”며 시작했다.

이 결심에 제자인 이성진 최고과학책임자(CSO)가 3D 세포 배양 플랫폼 개발을 맡고, 자동화·로보틱스를 전공한 이동현 최고기술책임자(CTO)가 자동화 솔루션을 맡으며 합류했다. 나노 생산, 로봇과 모터, 센서·튜빙에 익숙한 공학도들이 세포를 다루는 생물학자들과 팀을 짜 ‘숨 쉬는 마이크로웰’과 ‘세포들을 성숙시키는 배양기’를 같이 설계했다. 셀로이드 기업부설연구소는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연구개발(R&D) 역량 진단에서 국내 기업 연구소 상위 10% 이내 평가를 받았다. 임직원 15명 중 석사 이상 인력이 11명으로 3D 세포배양·자동화·AI·소재 합성 전문가들이 고르게 포진해 있다.

● 성모병원과 준비하는 ‘동물실험 이후’의 세상


셀로이드의 현재 거점은 서울성모병원 성의회관 내 포스텍-가톨릭대 의생명공학연구원이다. 첨단 의료기법이 적용되고 신약 물질이 발굴되는 글로벌 연구중심병원에서 중요한 원재료 중 하나인 오가노이드를 키우고 있다.

서울성모병원은 첨단 재생의료, 세포·유전자 치료 임상 역량을 갖춘 병원이다. 병원 연구진과 함께 약물 반응, 독성 평가, 재생치료 가능성을 실험한다. 셀로이드가 이곳을 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동물실험을 줄이겠다고 말하려면, 사람 세포와 환자 데이터를 다루는 현장 안에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셀로이드는 미국 스탠퍼드 의대에서 스핀오프한 스타트업과 심장 오가노이드 공동 연구 및 사업화를 진행 중이다. 또 줄기세포 및 오가노이드를 이용한 동물 대체 및 첨단 재생의료기술을 개발 중인 입셀, 오가노이드사이언스, 에드믹바이오 같은 기업들의 오가노이드 배양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동물대체시험법의 개발·보급 및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되고, 식품의약품 안전처와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등이 참여하는 K-오가노이드 컨소시엄, 오가노이드 표준연구회(OSI) 등이 출범하며 제도화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김 대표는 식약처 안전평가원 산하 OSI 기술인프라 분과장, K-오가노이드 컨소시엄 초대 이사로 새로운 표준 논의 한복판에 서 있다. “규제를 쫓아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만드는 배양 프로토콜이 언젠가 규제의 표준이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아직 적자이고, 오가노이드·동물 대체 시험 관련 제도도 완성되지 않았다. 경쟁도 더 치열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신약 개발 과정에서 동물실험을 없애려면 동물 대신 실험을 할 수 있는 믿을 만한 오가노이드를 경제적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런 시대를 먼저 열고 싶다”고 했다.





글·사진=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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