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효림의 베스트셀러 레시피]많은 사람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는 베스트셀러. 창작자들은 자신이 만든 콘텐츠가 베스트셀러가 되길 꿈꾸지만,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이 희귀한 확률을 뚫고 베스트셀러가 된 콘텐츠가 탄생한 과정을 들여다본다. 창작자의 노하우를 비롯해 이 시대 사람들의 욕망, 사회 트렌드 등을 확인할 수 있다.2016년 첫 아들을 낳고 3개월 쉰 후 변호사 업무에 복귀했다. 상담을 하루 7~9건 했다. 사무실이 서울과 인천에 각각 있어서 어떤 날은 하루 두 번 왕복하기도 했다. 직원들 월급을 줄 수 있을지 걱정돼 가슴이 조여 왔다. 새벽까지 안 자는 아기를 달래느라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체력이 약해 수시로 고열이 나고 몸은 바닥으로 파고드는 것 같았다. 변호사 5년차. 일을 잘하고 싶었지만 계속 뒤처지는 것 같았다. ‘살기 위해’ 2018년부터 틈틈이 글을 썼다. 6년간 A4 용지 3000장 넘게 쓴 글로 이혼 소송을 다룬 화제의 드라마 ‘굿 파트너’(2024년)가 탄생했다.
‘굿 파트너’ 극본을 쓴 최유나 변호사(41) 이야기다. 현재 그는 올해 11월 방송 예정인 ‘굿 파트너2’ 극본을 쓰고 있다. 이혼전문변호사(직원이 90명 넘는 법무법인 태성 대표변호사다), 작가, 유튜버, 두 아들(10살, 5살)의 엄마인 그는 이 많은 일을 어떻게 해 낼까. 그는 말했다.
“글 쓰는 게 제겐 힐링이에요. 2016년과 2017년은 생각이 거의 안 나요. 너무 힘들어서 기억이 지워진 것 같아요. 글쓰기는 숨을 쉴 수 있게 해준 통로였어요. 업무, 육아를 하기 위해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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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리지 아워’를 쓴 최유나 변호사. 지호영 기자 f3young@donga.com
그가 시간 활용법을 담은 ‘마일리지 아워’(북로망스)는 지난해 11월 출간된 지 2개월 만에 2만 권 넘게 판매됐다.(국내 출판계의 베스트셀러 기준은 책 판매량 1만 권이다.)
최 변호사를 10일 전화 인터뷰하고 양예주 편집자(41)를 13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최 변호사는 수년 전부터 여러 출판사로부터 시간 관리법을 담은 책을 내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고사했다. 책 한 권을 채울 내용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성취를 이룬 사람들의 시간 관리법을 찾아 활용하고 자신의 생활을 살펴보면서 책을 쓸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이번엔 그가 출판사 문을 두드렸다. 전승환 ‘책 읽어주는 남자’ 대표와 아는 사이였고(북로망스는 책 읽어주는 남자의 출판 브랜드다) 출판사에 대한 호감이 컸다고 한다.
“책을 한 권씩 집중해서 만드는 점에 끌렸어요. 제가 좋아하는 책을 여럿 낸 출판사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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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편집자는 추가로 필요한 꼭지를 더 써달라고 요청하는 등 최 변호사와 수시로 연락하면서 빠른 답장에 놀랐다.
“변호사님은 메일을 보내면 2~3시간 안에 답장하세요. 보내드린 내용은 당연히 다 읽으시고요. 15년째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데 이렇게 빠르게 작업한 건 손에 꼽을 정도예요. 책 구성과 문장 수정도 전적으로 믿고 맡겨주셨습니다.”
‘마일리지 아워’ 책 표지. 북로망스 제공
한국외대 영어통번역학과를 나와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최 변호사는 자신이 꾸준히 뭔가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책을 더 쓰고 싶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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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평소 일과는 이렇다. 오전 9시에 두 아들을 등교·등원시킨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회사 업무를 한 후 한 시간 정도 쉬거나 저녁을 먹는다. 오후 8시부터 10시까지 아이들을 돌보고 10시부터 자정까지 글을 쓴다. 주중에는 8시간, 주말에는 10시간 정도 잔다.(아이들이 어렸던 2023년까지는 이 정도로 잠자기는 어려웠다고 했다.) 변호사인 남편은 평일 저녁과 주말에도 일해 아이들 돌보기는 주로 그의 몫이다. 최 변호사는 “처음엔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남편 업무의 특성상 어쩔 수 없기에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먼저 마감을 정한다. 일의 규모에 따라 30분, 3일, 3주일 등 마감을 정하면 집중도가 높아진다. 모든 일은 착수시기를 일정에 적는다. 강연 요청이 들어오면 미리 불안해하지 말고 강연 자료를 만들기로 정한 날부터 작업한다. 메일 확인, 병원 예약 등 자잘한 일은 지하철이나 택시로 이동하는 시간에 처리한다.
드라마 ‘굿 파트너’의 유명 이혼전문변호사 차은경(장나라). ‘굿 파트너’는 최유나 변호사가 출산과 육아로 너무나 버거웠을 때 ‘살기 위해’ 쓴 글에서 탄생했다. SBS 제공
틈틈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충전하는 것도 중요하다. 미술관을 좋아해서 상담이 취소되면 가까운 미술관을 찾는다. 재판 전이나 상담 전, 시간이 나면 글을 쓴다.
“글을 쓰면 불안감이 낮아지고 스트레스가 풀려요. 변호사 업무에도 도움이 되고요.”
양 편집자는 책의 각 장 뒤에 ‘언제까지 안 되는 이유만 찾을 건가요. 마주하고 실패하고 보완하세요’, ‘다 잘하려는 노력, 꼼꼼하게 모든 것을 챙기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세 가지 정도만 추려보면 어떨까요’ 등 핵심 내용을 정리해 독자들이 한 번 더 되새기게 했다.
제목 ‘마일리지 아워’는 최 변호사의 아이디어다. 비행기 마일리지를 적립하면 항공권을 살 수 있는 것처럼 무언가를 위해 매일 20분 혹은 그 이상 애쓰는 건 시간을 적립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양 편집자는 ‘마일리지 아워’를 최우선으로 두고 다른 제목도 검토했다.
“‘마일리지 라이프’, ‘나는 나를 믿는다’ 등 후보도 뽑았어요. 여러 번 살펴보고 변호사님의 로펌 단톡방에서 투표도 했는데 ‘마일리지 아워’가 가장 좋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독자들은 “바로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작가님의 리얼한 현실을 가감 없이 알려줘 의지를 불러일으킨다”고 썼다. 출판사로도 독자 메일이 많이 온다.
“‘워킹맘인데 큰 힘을 얻었다’는 분들이 많아요. 최 변호사님이 자신의 노하우를 있는 그대로 다 공개하셨는데요, 그 점이 독자들에게 가 닿은 것 같아요.”
여러 역할을 해내는 최 변호사도 자녀 교육에 대한 불안은 있다고 했다.
“대치동 근처에 사는데요, 주위 엄마들이 아이들을 밀착해서 돌보는 걸 보면 ‘나는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해요. 하지만 교육에 대해서는 많이 내려놓으려고 해요. 엄마가 애쓰는 걸 보여주면서 아이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생각하게 만들어주고 싶어요.”
그는 항공사 마일리지를 쌓아 꿈꾸던 뉴욕 여행을 다녀왔다. 그 다음엔 뭘 할까.
“마일리지를 또 쌓아야죠.(웃음) 많은 분들이 ‘이룬 걸 즐겨’라고 하지만 저는 ‘아직’이라고 생각해요. 즐길 줄 모르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게 많아서 그래요.”
지금은 ‘굿파트너2’ 촬영을 앞두고 있어서 주말과 주중 하루는 대본 쓰기에 매달리고 있다.
“시간이 촉박해서 초안을 쓴 다음 계속 수정하고 있어요. 고시생처럼 살고 있습니다.(웃음) 많은 분들이 ‘굿 파트너’를 좋아해주셔서 책임감을 더 느껴요. 아이들은 부모님이 봐주세요.”
최 변호사는 다음 책은 글쓰기 책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굿 파트너’ 시청자 댓글을 모두 읽은 그는 ‘마일리지 아워’ 독자 댓글도 다 볼 예정이다.
“악플까지 모두 봅니다. 그래야 독자들이 뭘 필요로 하는지 알 수 있어 다음 책을 쓰는데 도움이 되니까요.(웃음)”
■‘마일리지 아워’(북로망스·2025년)는….이혼전문변호사이자 드라마 ‘굿 파트너’(2024년)의 극본을 쓴 작가, 유튜버, 두 아들의 엄마인 최유나 씨(41)가 자신의 시간 관리법을 정리했다.
저자는 진득하게 뭔가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한다. 한국외대 영어통번역학과에 진학한 그는 독서, 달리기 등 결심을 해도 한 달 이상 한 게 없었다. 매일 도서관에 가고 영어 단어를 외우는 친구들을 대단하게 여겼다.
아버지의 권유로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에 간 그는 법대를 나오거나 사법고시를 준비하다 온 사람들 사이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1학년 1학기 성적은 전교 꼴등에 가까웠다. “망했다”며 아버지에게 원망을 쏟아냈다. 아버지는 “휴학을 하든 그만두든 네 선택”이라고 했다. 막막해진 그는 꾸준하게 뭔가를 해야 커리어를 갖고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실에서 가장 늦게 남아 공부하기로 했다. 3년을 버텼고 상위권으로 로스쿨을 졸업했다.
저자는 하루 24시간 중 수면 시간과 업무 시간을 빼고 남은 7시간 중 절반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절반은 5년 후, 10년 후 미래를 위해 투자하라고 말한다.
완벽한 준비란 있을 수 없으므로 일단 실행부터 하며 보완하라고 권한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조금만 시간을 들여 100일만 계속 해보라고 말한다. 저자 역시 책을 쓸 때 하루에 A4 한 장씩 100일만 쓰자고 결심했다. ‘마일리지 아워’ 역시 이렇게 썼다.
중요한 역할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대충 하자는 마음도 필요하다. 저자는 치마 블라우스 원피스 하이힐을 좋아했지만 매일 맞춰 입고 관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들었다. 이에 검은색 슬랙스를 여러 개 사서 바꿔 입고 구김 가지 않는 소재의 셔츠를 돌려 입는다. 신발은 통굽 구두, 운동화를 신는다.
친절하게 거절하는 것도 시간을 지키는 방법이다. 그는 “거절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불쾌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를 존중하는 것이며 내 한계를 미리 알려줌으로써 관계를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맛집에서 혼자 밥을 먹는 등 틈틈이 좋아하는 것을 하며 에너지를 채우는 것도 일상을 이어가는데 꼭 필요하다.
원하는 것을 향해 지치지 않고 나아가는 법과 이를 위한 마음 가짐을 세심하게 알려준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