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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 있어도 ‘마음’은 없는 AI

입력 | 2026-02-17 08:13:00

[강석기의 뇌과학 리포트] 진화로 형성된 인간 정체성은 기계가 발전해도 가질 수 없어






사람의 말과 생각, 감정과 행동은 뇌과학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우리를 움직이는 뇌. 강석기 칼럼니스트가 최신 연구와 일상 사례를 바탕으로 뇌가 만들어내는 마음의 비밀을 풀어준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찰스 다윈, 앨런 튜링(왼쪽부터)은 모두 다른 시대에 살았던 과학자지만 과학적 발견 및 추론으로 당시 인간의 지위와 정체성을 뒤흔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GETTYIMAGES ·동아DB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찰스 다윈, 앨런 튜링. 세 과학자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세 사람이 살았던 시대와 그들의 전문 분야는 모두 다르다. 하지만 ‘인간의 지위’라는 키워드와 관련이 깊은 인물들이다. 모두 과학적 발견 또는 추론을 바탕으로 인간을 세상 중심에서 밀어내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튜링 테스트 통과한 GPT-4.5
16세기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는 천체 관측 데이터를 해석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지구에 거주하는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말과 같았다. 19세기 생물학자 다윈은 진화론을 다룬 책 ‘종의 기원’을 출간해 당시 유럽 문화에서 핵심인 기독교 창조론을 신화 영역으로 떨어뜨렸다. 인간 역시 진화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통해 인간이 동물과 다른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동물의 한 종일 뿐임을 밝혔다.

20세기 수학자 튜링은 오늘날 컴퓨터 작동 원리를 담은 가상의 기계 ‘튜링 머신’을 제안했다. 그리고 이 기계가 고도로 발전하면 인간과 같은 지능을 갖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1950년 발표한 논문 ‘계산 기계와 지능’에서 튜링은 오늘날 ‘튜링 테스트’로 불리는 모방 게임을 제시했다. 어떤 이가 사람인지, 기계인지 모르는 상대와 대화를 나눈 뒤 상대를 사람으로 추정했는데 알고 보니 기계였다면 이 기계는 테스트를 통과한다. 인간 사고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폭넓고 유연한 인지 능력인 ‘일반지능’(General Intelligence·GI)을 지닌 기계다. 사람이 아닌 기계의 능력이기에 우리는 이를 ‘인공일반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AGI)이라고 부른다.

튜링이 논문을 발표한 1950년은 크기가 집만큼 큰 초기 컴퓨터가 막 등장했을 때다. 지능을 가진 기계는 아득히 먼 미래 일이었을 테다. 15년 뒤인 1965년 철학자 허버트 드레퓌스가 인간 수준의 인공지능(AI) 개발 현황에 대해 “나무를 타고 올라 달에 도달하려는 것과 같다”고 비아냥댔을 정도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까지만 해도 AI에 대한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은 드레퓌스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2022년 챗GPT가 출시되면서 AGI의 가능성을 두고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드디어 지난해 3월 챗GPT의 새 버전 ‘GPT-4.5’가 튜링 테스트에서 실제 인간을 넘어서며 튜링의 꿈이 이뤄졌다. 당시 테스트에서 GPT-4.5를 상대한 피험자의 73%가 자신이 사람과 대화한다고 믿었는데, 오히려 진짜 사람과 대화한 피험자 중 자신이 사람을 상대했다고 답한 비율은 73%보다 낮았다. 결과를 못 믿겠는가. 주변을 둘러보라.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정말 많다.

인간 지위 빼앗길까 두려운 사람들
최근 학술지 ‘네이처’에는 AGI가 현실에서 이미 실현됐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의 글이 실렸다. 철학, 언어학, 인지과학 등 여러 분야 전문가 4명은 ‘AI는 이미 인간 수준의 지능을 지니고 있나? 증거는 명백하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거대언어모델(LLM) 기반 AI가 76년 전 튜링이 논문에서 제시한 수준에 이미 이르렀음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AGI가 실현되지 않았다고 믿는 이유와 이에 대한 반론을 제시했다.

저자들은 많은 사람이 AGI가 실현됐다는 현실을 부정하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인간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두려움을 꼽았다. AGI 실현을 인정한다는 건 인간이 설 자리를 스스로 내주는 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이러한 우려가 오류라고 강조한다. 인간과 같은 보편적 ‘지능’을 갖게 됐다고 해서 AGI가 곧 인간의 ‘마음’까지 가진 것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인간의 마음은 지능뿐 아니라 본능, 정서 등 다차원적 정신세계가 펼쳐지는 장이다. 오히려 인간 지능에는 못 미치지만 동물 진화를 통해 인간과 정서적으로 교감할 줄 아는 능력을 갖게 된 개나 고양이가 인간과 마음을 잘 나누는 모습을 보라.

AGI를 갖춘 기계의 존재를 인정하되, 지능이 곧 마음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AGI 시대에 두려움을 덜고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와 다윈을 거치며 인간 지위가 흔들렸어도 인간은 그 나름 길을 찾아왔다. 

강석기 칼럼니스트는… 서울대 화학과 및 동대학원에서 공부했다. LG생활건강연구소 연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를 거쳐 2012년부터 과학칼럼니스트이자 프리랜서 작가(대표 저서 ‘식물은 어떻게 작물이 되었나’)로 활동하고 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527호에 실렸습니다〉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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