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의 모습. 2026.2.12/뉴스1
삼성전자와 LG그룹, SK하이닉스 등은 미국 현지에 AI 전문 법인을 세우거나 사내 벤처캐피털(VC), 기업형 벤처투자회사(CVC)를 통해 유망 스타트업에 지분 투자를 확대하며 ‘AI 영토 확장’에 나섰다.
단순한 해외 시장 공략을 넘어, 전 세계 AI 자본과 인재가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는 실리콘밸리에 발을 들이지 않고서는 미래 기술 패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행보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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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는 지난달 28일 미국에 AI 투자를 총괄하고 현지 생태계와의 협력을 전담할 AI 솔루션 회사를 설립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반도체 하드웨어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AI 소프트웨어와 솔루션 영역까지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한 SK하이닉스는 이번 법인 설립을 계기로 미국 내 유망 AI 기업들과의 전략적 투자와 협업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특히 AI 데이터센터 구축과 운영과 관련된 기술 역량을 강화해, 단순한 메모리 공급사를 넘어 AI 인프라의 핵심 파트너로 도약하겠다는 전략이다. 반도체 생산에서부터 서비스 구현까지 이어지는 AI 밸류체인 전반에서 영향력을 키우겠다는 구상으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강조해온 ‘AI 중심 성장 전략’이 구체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최 회장이 최근 미국을 방문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혹 탄 브로드컴 CEO,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등을 잇따라 만난 것도 이 같은 흐름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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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과 인재가 있는 美로 투자 집중해야”
국내 대기업들이 미국 투자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압도적인 시장 규모와 기술 발전 속도의 차이가 자리 잡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AI 정책 저장소의 벤처투자 통계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1∼3분기 전 세계 AI 분야 벤처투자액의 72%가 미국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한국으로 유입된 투자금은 전 세계의 약 1% 수준에 그쳤다. 자본 격차가 곧 기술 격차로 이어지는 구조 속에서 미국 스타트업들은 풍부한 자금을 바탕으로 빠른 속도의 기술 고도화를 이뤄내고 있다.
여기에 실리콘밸리는 구글과 메타, 오픈AI 등 글로벌 빅테크 출신 엔지니어들이 대거 창업에 뛰어드는 세계 최대의 ‘AI 인재 저수지’로 꼽힌다. 가장 앞선 원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금과 인재가 동시에 몰리는 지역에 투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재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단기적인 투자 확대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으로는 연구개발 거점과 사업 축의 이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미국에서 기술을 선점하지 못할 경우 글로벌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다만 국내 기업들의 해외 투자 확대로 인해 상대적으로 국내 AI 생태계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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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