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내 다리를 믿자” 버텼다… 두번 넘어지고도 끝내 웃었다

입력 | 2026-02-14 01:40:00

[26 밀라노 겨울올림픽]
18세 여고생 최가온 한국 첫 金… 올림픽 스노보드 최연소
1차 시기, 얼굴부터 떨어져 경기 중단… 2차 ‘주특기 기술’도 실패
마지막 3차서 5개 점프 완벽히 성공… “나를 뛰어넘는 선수될것”




올림픽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결선 때는 3번의 기회가 있다. 최가온(18)은 그중 처음 두 번을 허무하게 날렸다.

1차 최가온이 13일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결선 1차 시기에서 두 번째 점프인 스위치 백사이드 1080을 시도하던 중 파이프 턱에 보드가 걸려 거꾸로 넘어지고 있다. 리비뇨=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13일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겨울올림픽 결선에서 최가온은 1차 시기 두 번째 점프에서 스위치 백사이드 1080(주행 반대 방향으로 떠올라 등이 하늘을 향한 채 세 바퀴 회전)을 시도하다가 파이프에 얼굴부터 떨어지며 크게 넘어졌다. 응급구조팀이 추락 지점으로 출동한 뒤에도 최가온은 한참 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전광판에는 잠시 동안 미출전을 의미하는 DNS(Did Not Start)가 표기됐다. 그런데 긴급 처치를 받은 최가온은 슬로프 아래가 아닌 위로 향했다. 경기를 계속한다는 의미였다.

2차 최가온은 2차 시기에서는 첫 점프인 스위치 백사이드 900 랜딩에 실패했다. 리비뇨=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최가온은 2차 시기 첫 점프 때 시그니처 기술인 스위치 백사이드 900(주행 반대 방향으로 떠올라 등이 하늘을 향한 채 두 바퀴 반 회전)을 시도했다. 하지만 1차 시기 때 당한 후유증 탓인지 힘없이 넘어졌다.

2차 시기까지 최가온이 받은 점수는 100점 만점에 10점, 12명의 출전 선수 중 9위였다. 반면 스노보드 종목 사상 첫 올림픽 3연패에 도전한 클로이 김(26·미국)은 88.00점으로 1위를 달리고 있었다. 클로이 김은 1차 시기부터 회전축을 두 번 바꾸며 3회전 하는 ‘더블코크 1080’을 성공시켰다.

3차 하지만 마지막 3차 시기에서 다섯 가지 점프를 모두 다른 도입과 그랩으로 성공시키며 대역전 드라마를 썼다. 리비뇨=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마지막 3차 시기. 단 한 번의 실수도 허락되지 않는 상황에서 최가온은 무리하지 않았다. 평소 자신 있는 다섯 개의 점프를 구성했고, 다섯 번 모두 깔끔하게 성공시켰다. 연기를 마친 최가온의 눈에서는 이미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김수철 코치 역시 함께 울고 있었다.

전광판에는 ‘90.25점’이 떴다. 하프파이프에서 시도할 수 있는 모든 방향의 기술을 모두 다른 그랩으로 보여주며 ‘다양성’을 충족시킨 결과였다. 최가온은 이날 각기 다른 도입과 그랩의 다섯 가지 점프를 모두 성공시켰다. 최가온의 얼굴에 이날 처음으로 웃음이 번졌다.

마지막 3차 시기에 나선 클로이 김은 1차 시기와 똑같은 루틴으로 캡 더블코크 1080을 시도하다가 넘어지면서 최가온의 금메달이 확정됐다.

시상대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눈물을 훔치며 걸어 나오던 최가온은 무릎 통증 탓에 줄곧 다리를 절뚝이는 모습이었다.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최가온의 몸은 성한 곳이 거의 없었다. 리비뇨로 오기 직전까지 스위스 락스에서 훈련하던 최가온은 훈련 중 손가락 인대 골절 부상을 당해 왼손에 반깁스를 하고 있었다. 여기에 이날 1차 시기를 하다가 무릎까지 크게 다쳤다. 함께 응원하던 가족들조차 기권을 권했을 정도였다.

최가온은 “1차 시기가 끝나고 ‘올림픽을 여기서 그만둬야 하나’ 하는 생각에 엉엉 울었다. 처음에는 다리에 아예 힘이 안 들어갔다. 그런데 걷기 시작하니까 조금씩 나아졌다”며 “마지막 3차 시기 때 ‘내 다리를 믿고 해보자’고 생각하고 탔다. 부상을 당한 오른쪽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길래 이를 악물고 버텼다”고 했다. 그는 또 “출전 선수 중에 제가 가장 열심히 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금메달은) 하늘에서 내려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롤모델이던 클로이 김을 넘어서면서 앞으로 여자 스노보드 하프파이프에는 최가온의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보인다. 최가온은 앞서 부상 등으로 클로이 김이 출전하지 않은 이번 시즌 3차례의 월드컵에서 모두 우승하며 1인자로 등극했다. 최가온은 “앞으로도 스노보드 열심히 타서 나 자신을 뛰어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시상식을 비롯한 모든 행사를 마친 뒤 최가온은 영락없는 또래 고등학생으로 돌아왔다. 최가온은 “친구들이 새벽인데 잠도 안 자고 단톡방에서 응원해줬다. 아까 잠깐 친구들이랑 영상통화를 했는데 다들 울고 있더라”며 “빨리 한국 가서 친구들이랑 밥도 먹고, 파자마 파티도 하고 싶다”며 웃었다.

한편 이번 올림픽의 단독 TV 중계사인 JTBC는 이날 최가온의 역사적인 금메달을 본채널에서 생중계하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JTBC는 최가온의 1차 시기까지 생중계한 뒤 같은 시간대에 열리던 쇼트트랙 중계로 전환했다. 금메달이 결정된 최가온의 3차 시기는 본채널이 아닌 계열사 스포츠채널에서 생중계됐고, 본채널에서는 금메달 소식을 자막 속보로만 처리했다.



리비뇨=임보미 기자 bom@donga.com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