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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복화술-목소리-침묵… 김혜순 시로 들어가는 열쇳말 19개

입력 | 2026-02-14 01:40:00

산문 19편 추려 엮어낸 시론집
시간 압축 속 내밀한 과정 포착
정상-비정상 사이 새 기준 적용
◇공중의 복화술/김혜순 지음/330쪽·1만8000원·문학과지성사




47년간 시를 써온 김혜순 시인. 그는 자신의 일상을 녹화한 수 시간 분량의 필름을 갖고 있다. 녹화된 자신의 모습을 원래 속도로 끝까지 볼 용기는 없어, 재생 속도를 높여 들여다본다. 수 시간이 5분으로 압축되자, 자신이 마치 “심신미약, 신체장애, 조현병, 청각장애인, 시각장애인, 말더듬이”인 것처럼 행동한다는 걸 그는 발견한다. 겨우 시간의 흐름을 축지법처럼 접어본 것뿐인데, 시간을 쥐어짜듯 다뤄본 것뿐인데 벌어진 일이다.

김 시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詩作)의 내밀한 과정을 포착한다. 몸을 시간 속에서 일부러 파괴해 보고, 넘어뜨려 보는 것. 그리하여 정상과 비정상, 존재와 비존재 사이에 놓인 자세를 발견하는 것. ‘정상적’이라고 명명된 언어의 질서에 다른 기준을 적용해 보는 것이다.

신간 ‘공중의 복화술’은 김 시인이 문예지 ‘Axt’에 연재한 산문 13편과 국내외 강연 및 여러 매체를 통해 발표한 산문 가운데 6편을 추려 묶은 시론집이다. 복화술, 목소리, 슬픔, 침묵 등 김혜순 시학의 핵심어 19개를 축으로 구성됐다.

수록된 산문 ‘딸꾹질 전문가’에서 그는 문학을 “차별의 시선에 대한 심한 딸꾹질”에 비유한다. 정상성을 외치는 이들의 참혹한 응시에 시달리다 보면 몸 깊숙한 곳에서 딸꾹질이 치밀어 오른다는 것이다. 마치 온종일 방치돼 울던 아이가 울음을 멈추고, 몸을 부르르 떨며 딸꾹질을 시작하듯이 말이다.

이렇듯 경련하고 발작하는 존재들은, 평탄하고 평안하게 존재하고자 하는 ‘정상인’들의 청각과 시각을 교란한다. 쫓겨났으나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주변에 남아 웅성거리며 존재를 지속한다. 죽은 자의 넋처럼.

김 시인은 한국인 최초로 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독일 국제문학상을 잇달아 수상한 세계적 시인이다. 1979년 등단한 그가 어떻게 새로운 창발을 거듭할 수 있는지를 이 산문집을 통해 엿볼 수 있다. 1970년대 말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며 군부 검열과 폭력에 시달렸던 경험, 이를 7편의 시로 남기게 된 사정까지 김혜순 시의 내외부적 맥락을 두루 살필 수 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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