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수염은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도 구조적 특성만으로 사물을 감지하는 ‘지능형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코끼리의 코 표면에 난 약 1000개의 수염이 시력이 나쁜 코끼리에게 ‘제2의 눈’ 역할을 하는 핵심 감각 기관이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이 수염은 한 번 손실되면 다시 자라지 않아, 수염을 잃은 코끼리는 일상생활에서 치명적인 감각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12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는 독일 막스 플랑크 지능 시스템 연구소가 규명한 코끼리 수염의 구조적 특징과 감각 메커니즘이 공개됐다.
아시아코끼리의 수염을 분석한 결과, 다른 포유류와는 확연히 다른 ‘지능형 구조(Built-in intelligence)’가 확인됐다. 이는 복잡한 뇌의 명령 없이도 수염의 형태만으로 사물을 정교하게 인식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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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이언스.
코끼리는 피부가 두껍고 시력이 매우 낮다. 이 때문에 코 끝 표면에 집중된 예민한 수염들에 의존해 먹이를 찾고 장애물을 피하는 것이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쥐와 같은 동물은 수염 뿌리 근육을 이용해 수염을 스스로 움직여 사물을 탐색하는 동작(위스킹, whisking)을 한다. 반면, 코끼리는 유연한 코 자체는 자유자재로 움직이지만, 수염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근육은 없다. 대신 코끼리 수염은 움직이지 않고도 감도를 극대화하도록 진화했다.
수염은 뿌리 부분은 단단하고 끝으로 갈수록 부드러워지는데, 이 전이 구조 덕분에 수염이 사물에 닿는 위치에 따라 신경세포가 각기 다른 신호를 보낸다. 덕분에 코끼리는 수염을 따로 휘두르지 않아도 물체의 위치와 질감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수염 내부는 마치 치즈처럼 미세한 구멍이 뚫린 다공성 형태를 띠고 있다. 이 구멍들은 외부 충격을 대신 흡수해 수염의 손상을 방지하는 완충 작용을 해준다.
이번 연구를 통해 코끼리는 눈을 감고도 수염 끝에 닿는 미세한 차이만으로 세상을 읽어낸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연구팀은 “코끼리의 수염이 자연이 만든 외계 생명체와 같은 독특한 구조”라고 표현했다. 거대한 몸집을 유지하기 위해 진화가 선택한 가장 정교한 감각 도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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