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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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글쓰기, 외국어 공부처럼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지적 자극 활동’이 알츠하이머병 발병 위험을 약 38% 낮추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평생에 걸쳐 두뇌를 꾸준히 사용하는 환경이 인지 기능 저하를 늦추고 발병 시점을 수년간 지연시킬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결과다.
알츠하이머병은 치매의 가장 흔한 유형이다. 치매는 대표적인 신경 퇴행성 질환이다. 노화가 가장 강력한 위험 요인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노인 인구 비중이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로 접어들었다. 건강보험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치매 환자는 2010년 24만 7000명에서 2023년 83만 5000명으로 증가했다. 2030년에는 123만 6000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치매를 예방하거나 발병 시기를 늦추는 전략을 찾은 것은 공중보건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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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은 참가자들이 평생 어느 수준의 지적 자극 환경에 있었는지 평가했다.
18세 이전 초기 지적 환경에서는 책을 누군가 읽어주거나 스스로 읽은 빈도, 가정 내 신문 구독·지도책·백과사전 보유 여부, 5년 이상 외국어 배운 경험 등이 포함됐다.
중년기 지적 환경은 40세 무렵 소득 수준, 잡지 구독 여부, 사전과 도서관 회원증 보유 여부, 박물관이나 도서관 방문 빈도 등을 평가했다.
80세 전후 노년기에는 독서, 글쓰기, 게임을 하는 빈도와 연금·퇴직금 등 소득 수준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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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진은 매년 임상 평가를 통해 평생 지적 자극 수준이 가장 높은 상위 10%와 가장 낮은 하위 10%를 비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 결과 지적 자극이 가장 높은 집단에서는 21%가 알츠하이머병에 걸렸지만, 가장 낮은 집단에서는 34%가 발병했다.
연령, 성별, 교육 수준 등을 보정한 뒤 분석한 결과, 평생 지적 자극 점수가 높을수록 알츠하이머병 위험은 38%(위험비 0.62), 경도 인지장애 위험은 36%(위험비 0.64) 낮게 나타났다.
이는 평생 지적 자극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질 때마다 치매 발병 위험이 38% 감소했다는 뜻으로, 상·하위 10% 집단을 직접 비교한 수치는 아니다.
또한 지적 자극이 가장 높은 집단은 평균 94세에 알츠하이머병이 발병했지만, 가장 낮은 집단은 평균 88세에 발병해 발생 시점이 5년 이상 늦춰진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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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연구 기간에 사망해 부검을 진행한 참가자들을 분석한 결과, 뇌 병리 수준 자체는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같은 병리 부담을 지닌 경우에도 평생 지적 자극 수준이 높은 사람일수록 사망 전까지 기억력과 사고력이 더 잘 유지됐다.
전문가들은 이를 ‘인지 예비력(cognitive reserve)’ 효과로 설명한다. 뇌에 알츠하이머 병변 같은 변화가 생겨도, 평생의 독서·학습·사회적 활동 같은 지적 자극을 통해 축적된 인지적 여유와 뇌의 적응 능력 덕분에 기능을 더 오래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는 미국신경학회 학술지 ’Neurology‘에 게재됐다.
가디언에 따르면, 연구를 주도한 러시대학교 신경심리학자 안드레아 자미트 박사(제1 저자)는 “다양한 정신적 활동에 꾸준히 참여하는 것이 인지 기능에 긍정적인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연구 결과는 고무적”이라며 “도서관이나 조기 교육 프로그램처럼 평생 학습에 대한 흥미를 키우는 환경에 대한 공공 투자가 치매 발생률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관찰 연구 기반 결과이기에 한계는 있다.
연구진은 참가자들이 노년기에 과거 경험을 회상해 설문지를 작성했기 때문에 기억 오류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활발한 지적 자극 활동이 치매를 예방하거나 발병을 늦출 수 있다는 인과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연관성만을 보여줄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가 가리키는 방향은 분명하다.
거창한 훈련이 아니어도 책을 읽고, 일기나 메모를 몇 줄 쓰고, 외국어가 됐든 악기가 됐든 새로운 것을 배우고, 낱말 맞추기 게임을 하는 것 같은 일상적인 지적 자극 활동이 두뇌를 더 오래 쓰는 힘이 될 수 있다.
관련 연구논문 주소: https://doi.org/10.1212/WNL.0000000000214677
박해식 기자 pistol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