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아 작가·전 대기업 임원
약속 장소에 들어섰을 때도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무대와 객석의 거리는 가까웠고, 앉아 있는 사람들의 차림새도 지극히 평범했다. 오프닝을 기다리는 동안 그곳에서 특별한 광경을 만나게 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막이 오르자 예상은 단번에 무너졌다. 첫 곡부터 귀를 사로잡았다. 조용히 감상만 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솔로 연주가 길어질수록 청중의 반응은 커졌고, 휴대전화를 들어 열기를 담으려는 모습도 보였다. 다들 음악에 흠뻑 빠져 있는 얼굴이었다. 한 시간쯤 예정된 순서가 지나고 두 번의 앙코르가 더해진 뒤에야 모든 공연이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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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한번 해볼까.” 순간 누군가 말했다. 60대로 보이는 남성이었다. 연습이 충분하지 않다며 잠시 머뭇거리자 모두들 괜찮다고 했다. 조심스레 악기를 잡았지만 중간중간 박자가 흐트러졌다. 이상하게 그때마다 더 큰 환호가 쏟아졌다. 이전까지의 박수가 전문 음악가를 위한 거였다면 이제는 서로를 향한 것이었다.
연주는 한 사람으로 멈추지 않았다. 동호회 회원들은 돌아가며 무대에 올랐다. 어떤 이는 기타만 쳤고 어떤 이는 노래까지 불렀다. 연이은 장면을 보며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그날만큼은 모임에 나온 사람들이 나보다 훨씬 행복하다는 사실을. 나 역시 겉으로는 녹아들어 있었지만, 속까지는 온전히 섞이지 못한 이방인이었다.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았을 때 옆에 앉은 분에게 말을 건넸다. “다 걱정 없어 보이세요.” 그분은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답했다. “걱정 없는 사람이 어딨어요. 그리고 돈이야 먹고살 만큼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겠어요.” 깜짝 놀랐다. 내가 꺼내지도 않은 돈 얘기를 하다니. 마치 나의 속내를 꿰뚫은 듯한 기분이었다. 담담한 말투와 편안한 미소가 나를 한층 머쓱하게 만들었다.
돌아보면 퇴직하고 나는 걱정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통장 잔액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국민연금이 나오기 전까지를 어떻게 견뎌야 할지. 경제적인 고민이 끊이지 않았다. 그사이 근심은 더욱 멀리 치달았다. 혹시 지금 하는 일마저 잘 안 되면 어쩌나, 병이라도 나면 또 어찌할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건만 머릿속에서는 늘 최악의 시나리오를 먼저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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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공연장에서 느낀 거리감은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퇴직 후의 삶은 충분히 준비돼야만 비로소 허락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실패했을 때는 물론이고 소소한 결과를 냈을 때조차 나에게 선을 그었다. 준비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만, 앞날의 대비를 핑계 삼아 현재를 유예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날 만난 이들도 근심이 없어서 웃고 있던 건 아니었을 듯했다. 다만 그들은 불안을 이유로 오늘을 포기하지 않았다. 퍽퍽한 일상에서 기타를 들었고 서툴지만 한 발을 내디뎠다. 그 작은 선택의 차이가 그 밤의 표정을 갈라놓고 있었다. 퇴직 후 안정은 더 많이 쌓아야만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그들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결국 내가 발견한 퇴직 후 행복을 가르는 한 끗은 미래의 불안을 대하는 태도였다. 불안이 완전히 없어지기만을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함께 살아갈 것인가. 불안이 사라지는 날은 오지 않는다. 잠시 잦아드는 듯하다가도 이내 다른 얼굴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완벽한 날을 기다리느라 삶을 미루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퇴직한 우리의 시간은 종종 준비 중이라는 이름으로 멈춰 선다. 상황이 나아지면, 여건이 갖춰지면 그때 해도 늦지 않다며 자신을 달랜다. 그렇지만 그렇게 보낸 날들은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 아직 펼쳐지지 않은 내일을 앞당겨 두려워하기보다 불완전하더라도 주어진 하루를 오롯이 사는 것.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결심은 그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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