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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먹는 조선민족 만들자!” 김정은이 빠다와 치즈에 꽂힌 이유[주성하의 ‘北토크’]

입력 | 2026-02-07 14:00:00


분단의 장벽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반세기 동안 북한을 지켜봐온 주성하 기자의 시선으로 풀어봅니다.

2일 평안북도 운전군 삼광축산농장을 방문한 김정은이 생산된 유제품을 맛보고 있다. 평가에 따라 여러 간부들의 운명이 결정될 상황이라, 주변 간부들의 표정이 매우 긴장돼 있다. 노동신문 뉴스1

2026년 김정은의 새로운 관심사가 등장했다. 인민들에게 빠다(버터)와 치즈를 먹이겠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2일 평북 삼광축산농장 조업식에 참가해 “각 도들에 실리 있는 축산 기지들을 연쇄적으로 일떠세우면서 축산 현대화의 흐름을 고조시키면 나라의 축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라며 “전체 주민들에게 우유와 빠다, 치즈를 비롯한 각종 젖 가공품과 고기 가공품들이 항상 차례지게 하는 목표를 내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집권 이래 김정은의 관심사는 수시로 변해왔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엔 지방산업공장, 대규모 온실, 관광단지 등이 대표적인 관심사였다. 하지만 올해 버터와 치즈 생산을 위해 각 도마다 축산 기지를 만들겠다는 새 목표가 제시됐다.

2012년 집권 이래 김정은의 행동 패턴을 분석해보면, 어떤 것에 꽂히면 그 목표에는 집요할 만큼 집착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제시한 목표를 완수했다고 공언할 정도의 성과물을 만들어 낼 때까지 집요하게 찾아가고, 닦달질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드디어 목표를 달성했다고 만세를 부른 뒤 그의 관심사는 새것으로 옮겨간다. 뒤에 남겨진 과거의 관심사가 숨이 넘어가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북한은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나 에너지 등 모든 것이 항상 부족하다. 한정된 자원은 김정은의 최근 관심사가 다 차지한다.

인민에게 육류와 버터를 먹이겠다는 꿈은, 지금까지 김정은이 제시했던 목표 중에 그나마 가장 칭찬할 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북한 인민에겐 먹는 문제가 제일 중요한데, 스키장 만들고, 관광단지 만들고 하는 것보단 먹는 것을 풀겠다고 하니 박수받아 마땅하다.

김정은이 천지개벽을 했다고 극찬하며 현대농촌, 현대축산의 본보기로 지칭한 삼광축산농장의 전경. 노동신문 뉴스1



● 빵 먹는 조선 민족의 꿈
그렇다면 김정은의 이번 ‘버터와 치즈의 꿈’은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일까.

우선 김정은이 왜 갑자기 버터와 치즈라는 목표를 들고나왔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김정은의 머릿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는 없지만, 과거를 통해 합리적인 추론은 도출해 낼 수 있다.

버터와 치즈는 밥과 어울리는 식품이 아니다. 대신 빵 문화권에서 버터, 치즈는 수천 년 넘게 식탁의 중심을 차지해 온 식품이다. 특히 유럽 농부들에게 빵과 치즈는 수천 년 동안 가장 기본적인 식사였으며, 역사적, 영양학적, 문화적 의미가 있다.

빵은 밀 재배와 연결된다. 김정은은 2021년 말 개최된 노동당 제8기 4차 전원회의에서 “인민의 식생활 문화를 흰쌀밥과 밀가루 음식 위주로 바꾸겠다”며 ‘알곡생산구조’ 전환을 선언했다.

이후 북한의 밀 경작지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김정은은 선대가 식량 문제 해결의 중점 과제로 내걸었던 옥수수, 감자 농사에서 탈피하려 한다. 최근 밀 생산 강국인 러시아와의 관계가 밀접해지면서, 군수품과 인력 지원에 대한 보상을 밀로 받을 가능성도 높아졌다.

대대로 밥을 먹는데 익숙했던 인민의 입맛을 바꾸려면, 빵에 버터와 치즈까지 발라 맛있게 먹게 해야 한다. 그래야 불만을 줄일 수 있다.

스위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빵과 버터, 에멘탈 치즈를 즐겨 먹었던 김정은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빵과 치즈가 옥수수밥보단 훨씬 맛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김정은이 2일 언급한 각 도의 축산 기지 건설은 낙농업을 키우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낙농업은 젖소 등을 사육하여 원유를 생산하고 이를 활용해 유제품을 생산하는 축산업이다.

문제는 낙농업 육성이 북한 실정에서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군인 등 인력을 대량으로 동원해 눈에 보이는 건물을 건설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물론 김정은도 그리 생각할 것이다. 

젖소 축사에 들어간 김정은이 목장 현대화를 위한 ‘강령적 지침’을 하달하고 있다. 뼈가 앙상한 주변 젖소들은 정신없이 사료를 먹고 있다. 노동신문 뉴스1



● 연설과 현실의 간극
삼광축산농장 조업식에서 한 김정은의 연설은 보기 드물게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고 있다. 그는 축산업 발전의 5대 고리로 △우량품종의 종자 확보 △충분한 사료 보장 △과학적인 사양관리 △철저한 수의방역 △생산과 경영 관리의 정보화·지능화를 내걸었다.

또 “‘풀 먹는 집짐승’을 기르기 위해 방목지와 도로가 필요하다는 개념에서 대담하게 탈피해야 하며 과학기술을 이용해 축사에서 가축을 키우는 방향으로 축산업의 개념을 바꿔야 한다”고 지시했다. 100%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말과 현실은 전혀 다르다.

예를 들어보자. 3년 전 한국 정부와 민간단체들이 젖소 101마리를 네팔에 지원한 일이 있다. 네팔은 낙농업이 매우 중요한 국가다. 국내총생산(GDP)의 9%를 낙농업이 차지한다.

그럼에도 네팔 토착종 젖소의 연간 마리당 산유량은 880㎏에 불과하다. 한국 젖소의 연간 산유량은 1만㎏이 넘는다. 한국 젖소 한 마리가 네팔보다 생산량이 10배 이상 많다. 북한의 젖소 품종은 낙농업으로 먹고 사는 네팔보다 결코 낫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우량 젖소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한국도 1970년대부터 반세기 넘게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 우량 젖소를 키워왔다. 1970년대 한국 젖소의 하루 우유생산량은 9리터였지만, 지금은 34리터로 올라섰다.

사료는 어떤가. 2024년 한국은 배합사료 생산량이 2000만 톤을 넘겼는데, 원료의 95% 이상을 수입한다. 젖소 사육에서 알팔파, 티모시 등 양질의 조사료(건초)는 필수적인데, 이것들도 해외에서 들여온다.

하지만 김정은은 “풀판들을 쓸모 있게 개량하고 영양가 높은 먹이풀들을 재배하라”고 했다. 한국이나 중국이 풀판이 없어 건초를 수입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에 건초까지 수입할 외화가 있을 리는 만무하지만, 북한 풀판에서 사료를 해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거기에 더해 젖소도 사람과 똑같이 알곡을 먹여야 한다.

철저한 수의방역도 말뿐일 가능성이 높다. 수의방역은 한국도 버거운 일이다. 김정은이 수천 명의 인력을 파견해 2013년부터 5년 동안 건설한, 세계 최대 규모의 목장이라고 자랑하던 약 1억5000만 평 규모의 세포등판 축산단지도 수의방역 때문에 망했다. 물론 세포등판도 사료부터 시작해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지만, 제일 큰 문제는 병에 걸려 죽는 가축이 많았던 것이다.

이 외에도 전기도 부족하고, 컴퓨터 등 첨단 반도체 설비도 귀한 북한에서 과학적인 사양관리와 정보화·지능화를 어떻게 이룩한다는 것인지도 상상이 되지 않는다.

2024년 1월 7일 딸 주애와 함께 광천닭공장을 현지시찰하고 있는 김정은. 1년 전부터 광천닭공장 기사는 북한 매체들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노동신문 뉴스1



● 백날 본보기를 창조해 봐야…
김정은은 이날 연설에서 광천닭공장을 가금업의 본보기로 만들었다고 자랑했다. 광천닭공장은 2년 전 김정은이 방문한 공장이다. 하지만 추위와 더위를 막아줄 냉난방시설, 사료 문제 등을 풀지 못해, 이후 제대로 생산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김정은이 이룩했다는 성과 중에 인정할 만한 것이 거의 없는데, 빵과 치즈의 꿈이라고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 그걸 기대하는 북한 주민은 없을 것이다.

공장이든, 목장이든, 김정은이 손대는 것마다 실패하는 진짜 이유는 경제 시스템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젖소 목장만 봐도 우량종자나 사료, 방역 약품 등은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 하지만 생산품이 나오면 김정은은 평양이나 군, 유치원 등에 생색을 내며 공짜로 풀 것이다. 그렇다고 생산에 필요한 외화를 지속적으로 대주는 것도 아니다. 

삼광축산농장 간부들은 이제부터 목숨을 하늘에 맡기고 살아야 한다. 김정은의 관심이 내년에 딴 곳에 쏠리면 젖소 목장은 찬밥 신세가 된다.

몇 년 뒤 김정은이 불쑥 찾아와 “당의 영도업적을 망쳤다”며 화를 내며 간부들을 반당반혁명분자라고 단죄할지 누가 아는가. 전기나 원료를 대주지 않으면, 모든 것에 천재라는 김정은을 총경리로 임명해봐야 뾰족한 묘수가 있을 리가 없다.

북한 인민이 빠다와 치즈를 먹고 살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시장경제를 인정하고 도입하면 된다. 그러면 김정은이 편히 쉬고 있어도 인민 생활은 빠르게 좋아진다.

…하지만 그걸 외면하고 있는 한, 김정은이 죽을 때까지 전국을 홍길동처럼 돌아다니며 격려하고 처벌하고 해봐야 성과가 나올 수가 없다. 어쩌면 인민이 잘살기 전에 간부들이 처벌받아 다 죽는 것이 현실적 가능성이 더 높을 듯싶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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