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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2월 5일 영국, 거문도에서 철수하다[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

입력 | 2026-02-04 23:09:00

영국이 1885년 거문도 불법 점령 당시 세운 조계비(표지석). 동아일보DB


이문영 역사작가

19세기 러시아는 겨울에 얼지 않는 항구를 확보하기 위해 남하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유럽의 강국 영국은 러시아의 지중해 진출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었다.

1853년 러시아는 오스만 제국 내 기독교인 보호를 명분으로 도나우강 연안의 오스만 제국 속국을 침공했다. 이에 오스만 제국은 영국의 지원 약속을 믿고 러시아와의 전면전에 돌입했다. 이 전쟁이 훗날 간호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로 널리 알려진 크림전쟁이다.

그러나 이미 ‘유럽의 환자’로 불리던 오스만 제국은 러시아군에 연패하며 위기에 몰렸다. 상황이 악화되자 영국과 프랑스가 러시아의 남진을 막기 위해 참전했고, 오스트리아까지 가세하면서 러시아군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결국 전쟁은 1856년 3월 종결됐다. 패전한 러시아는 흑해 함대를 해산하는 등 굴욕을 감수해야 했다.

영국과 러시아의 대결은 유럽에서 끝나지 않았다. 영국은 크림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돌파구를 찾기 위해 극동으로 눈길을 돌렸다. 1854년 8월 영국 해군은 캄차카반도의 페트로파블롭스크를 기습 공격했다. 당시 러시아는 아직 연해주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고, 이 항구는 러시아가 이용할 수 있는 최남단 거점이었다. 영국은 1855년 다시 한 차례 이 지역을 공격했다. 영국 해군은 이미 1845년 거문도를 조사하고 이곳을 ‘해밀턴항’으로 명명한 바 있었다.

러시아는 제2차 아편전쟁 뒤 1860년 체결된 베이징조약으로 연해주를 확보하고 블라디보스토크를 해군항으로 개발하게 된다. 영국이 쓰시마섬을 차지해 동남아시아 진출을 막을 것을 우려해 선수를 치려 한 것이다. 영국이 쓰시마섬을 점령하면 러시아는 목을 잡히는 형국이었다. 러시아는 일본에 영국이 쓰시마섬을 점령할 수 있으니 대비하라며 전쟁 물자 제공까지 제안했지만, 일본은 이를 거절했다. 결국 러시아는 1861년 3월 쓰시마섬을 점거한다.

영국은 즉각 이를 불법 행위로 규정해 항의했고, 전쟁도 불사할 태세를 보였다. 러시아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는 영국의 간섭에 분노했지만, 동아시아에 더 힘을 쏟을 수는 없었다. 중앙아시아에서 영국과 대치 중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은 이러한 사건을 국제 정치적 관점에서 바라보지 못했다.

1884년 러시아는 조선과 수호통상조약을 맺으며 다시 동아시아 진출을 모색했다. 러시아가 조선의 원산 지역을 조차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영국은 러시아 함대가 대한해협으로 진입할 경우에 대비한 요격기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1885년 3월 거문도를 불법 점령했다. 거문도는 이미 1850년대 러시아 군함이 탐문했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조선 조정은 협판교섭통상사무 묄렌도르프를 거문도로 파견해 철수를 요구했다. 외교 관료를 통해 대응한 첫 사례였지만, 러시아는 조선의 항의에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다. 결국 청나라 북양대신 이홍장이 중재에 나섰고, 중앙아시아 분쟁도 9월 타협에 이르자 영국은 러시아가 거문도를 점령하지 않는다면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영국은 1887년 2월 5일(음력), 약 2년에 걸친 점령을 끝내고 물러났다. 영국의 거문도 점령 사건은 국제 정세를 읽지 못할 때 나라의 운명이 얼마나 위태로워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문영 역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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