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뒷마당 격인 중남미 전체에 대한 장악력 확대를 강조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난해 1월 그의 재집권 후 대선을 실시한 칠레 볼리비아 에콰도르 온두라스 코스타리카 등에서는 모두 우파 후보가 승리했다. 워싱턴=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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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민 국제부 차장
이 ‘이란-콘트라 사건’은 미국이 중남미에 지은 일종의 원죄(原罪)로 꼽힌다. 1973년 칠레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일으킨 쿠데타, 1976∼1983년 아르헨티나 군부 정권이 약 3만 명의 민간인을 살해한 ‘더러운 전쟁(Dirty War)’ 또한 각각 미국의 지원, 묵인하에 이뤄졌다. 이로 인해 생겨난 뿌리 깊은 반미 감정은 1999년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취임을 계기로 중남미 전역에서 좌파 정권이 연쇄 탄생하는 ‘핑크타이드(pink tide)’의 한 원인이 됐다.
약 사반세기 동안 건재했던 핑크타이드는 지난해를 기점으로 급격히 꺾이는 분위기다. 대선을 치른 칠레 볼리비아 온두라스 에콰도르에서 모두 우파 지도자가 등장했다. 이달 1일 코스타리카 대선에서도 우파 후보가 승리했다. 5월 대선을 앞둔 콜롬비아에서도 역시 우파 후보가 지지율 선두권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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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타이드의 배경은 좌파 정권 치하의 경제난과 강력범죄 급증이다. 무상 복지는 고질적인 경제난을 심화시켰다. 그 과정에서 약탈과 살인이 판을 치자 사람들은 나라를 등졌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국민의 약 24.7%인 790만 명이 해외로 탈출했다. 산디니스타 출신의 좌파 대통령 다니엘 오르테가(1985∼1990년, 2007년∼현재)가 장기 집권 중인 니카라과에서도 2022년 기준 국민의 17%인 110만 명이 탈출했다.
이를 감안하면 지난달 3일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축출은 우연이 아니다. 민심 이반이 없었다면 미국이 군사력만으로 타국의 현직 대통령을 그토록 쉽게 생포할 수 있었을까. 쿠바 또한 1959년 공산 혁명 후 67년간 국민을 배부르게 해 주지 못했다. 미국이 ‘올해 안 쿠바 정권 교체’에 대한 자신감을 보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재집권 후 중남미에서의 영향력을 크게 확장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최근 주요국의 대선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했고 친미 성향 아르헨티나의 중간선거 때는 400억 달러(약 58조 원)의 통 큰 지원을 약속했다. 그가 콜롬비아와 브라질의 대선 때도 어떤 식으로든 관여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몇몇 행보는 중남미의 친미 정권을 늘리겠다는 자신들의 목표와 상충된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은 지난해 9월 카리브해의 마약 운반선을 격침하는 과정에서 선박 잔해에 매달린 생존자 두 명에 대한 추가 공격을 지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저항 능력을 상실한 상대를 죽이는 건 전쟁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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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민 국제부 차장 de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