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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귀족의 상속 관행 깬 건 ‘사랑’이었다

입력 | 2026-01-24 01:40:00

◇가문에서 가족으로/로베르토 비조키 지음·임동현 옮김/352쪽·2만1000원·글항아리




위업을 이룬 것도 아닌 평범한 개인의 일기나 회고록, 편지, 재산분할 기록 같은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미시사(微視史) 연구자에겐 훌륭한 사료가 된다. 이탈리아 역사학자가 토스카나의 문서보관소에서 발굴한 기록을 토대로 17세기 후반부터 19세기 후반까지의 ‘브라치 캄비니’라는 가문의 역사를 재구성한 책이다.

“그녀는 내가 지정한 유언 집행인의 도움을 받을 것이며, 나는 그녀가 언제나 그랬듯이 따뜻하고 진실한 부부간의 사랑을 지금처럼 힘든 상황에서도 이어갈 것이라고 믿는다.”(2부 ‘안토니오 마리아와 안나의 사교 그리고 루소리오의 결혼’에서)

책이 다루는 이 가문의 3대인 루소리오가 남긴 유언장의 일부로, 그가 부인 테레사에 대해 가진 생각을 알 수 있다. 사소한 내용 같지만 저자는 루소리오가 유산 분할에서 홀로 남을 아내의 삶을 확실히 보장하려고 했다는 데 주목했다. 형의 두 아들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음에도, 루소리오는 부계 친족에게 유산 상속의 우선권을 부여하지 않고 당시 관행보다 훨씬 많은 대부분의 재산을 부인에게 남겼다.

저자는 여기서 가문을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귀족들의 ‘가문의 논리’가 계몽주의의 확산 속에 흔들리고 있었음을 포착해 낸다. 가문의 경제적 부를 유지하기 위해 차남 이하의 아들은 결혼도 하지 않는 등 재산의 분할을 막는 걸 뭣보다 우선시했던 과거의 관행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던 것. ‘이익과 애정 사이’, 근대인의 감성이 어떻게 태어났는지를 생생하게 조명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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