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요리 조력자’로 부활한 조미료 셰프도 다시다-치킨스톡 써 감칠맛…‘조미료 칵테일’도 등장
유해성 논란에 휩싸였던 조미료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서 셰프들이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맛의 완성도를 높이는 식재료로 재평가되고 있다.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맛의 깊이를 설계하는 조력자’로 자리 잡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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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료가 맛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하나의 식재료로 전 세계 식탁에 녹아들고 있다. 유명 셰프들마저 필요할 때는 조미료를 쓰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등장하면서, 이제 조미료는 ‘인위적인 첨가물’이라는 예전의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맛의 깊이를 설계하는 조력자’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글로벌 미식 트렌드에서도 감칠맛을 가리키는 ‘우마미(うま味·umami)’가 핵심 키워드로 부상하면서 조미료를 바라보는 시선이 변하고 있다.
● 미원에서 다시다까지 ‘감칠맛의 산업화’
대상 ‘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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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제일제당 ‘다시다’
● MSG 논란 딛고 ‘자연재료-액상 형태’로 진화
MSG가 포함된 조미료 시장은 큰 위기를 겪기도 했다. 1990년대 초 ‘MSG 유해성’ 논란이 불거지면서 조미료 전반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급격히 악화됐기 때문이다. 1993년 ㈜럭키(현 LG생활건강)가 ‘맛그린’을 출시하며 타사 제품을 겨냥해 “화학조미료 MSG는 이제 그만”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 기폭제가 됐다. 이 과정에서 쇠고기 다시다를 비롯한 기존 조미료는 논란의 중심에 섰고, ‘MSG 조미료=건강에 나쁜 식품’이라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됐다.
당시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가 해당 광고에 대한 시정 명령을 내렸지만, 이미 소비자들은 ‘MSG는 건강에 나쁘다’는 인식을 하게 된 뒤였다. 이후 미원을 비롯한 조미료는 장기간 소비자의 외면을 받으며 매출도 크게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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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청정원 참치액’
조미료에 대한 시선이 달라지자 한때 논란의 중심에 섰던 기존 제품들도 재단장에 나섰다. CJ제일제당은 2012년 다시다의 프리미엄 라인인 ‘명품골드 다시다 쇠고기’를 선보인 데 이어, 2017년에는 별도 양념 없이 한 끼 요리를 완성할 수 있는 제품 ‘다시다 요리의 신’을 출시했다. 대상도 2014년 미원을 대대적으로 재단장한 신제품 ‘발효미원’을 내놓았다. 소비자들의 입맛 변화에 맞춰 감칠맛의 균형을 조절하는 한편 패키지 디자인에도 변화를 줬다. 60년간 미원을 상징한 붉은 신선로 모양을 축소했고, 이듬해엔 연녹색을 강조한 제품도 선보였다.
● ‘집밥’ 수요 증가로 ‘코인 조미료’ 급부상
CJ제일제당 ‘백설 육수에는 1분링’
소비자 반응도 좋은 편이다.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집에서 요리한다는 직장인 지용석 씨(32)는 “4년 전만 해도 가루형 쇠고기 다시다를 썼지만, 지난해부터 1년 정도 코인 육수만 쓰고 있다”며 “가루는 보관하다 보면 뭉치기 쉬운데 코인형은 1회분씩 포장돼 있어 양 조절이 쉽고 보관도 간편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퇴근 후 시간을 많이 들이기 어려운데, 코인 육수를 쓰면 간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장찌개 같은 국물 요리를 쉽게 만들 수 있다 보니 효율적”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코인 육수 시장의 성장 배경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식생활이 달라졌다는 점을 꼽는다. 외식이 줄고 집밥이 일상화되면서 조리에 익숙하지 않은 1인 가구와 MZ세대 소비자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간편 조미료 수요가 확대됐다는 분석이다. 하상도 중앙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특히 1인 가구 증가로 대부분의 식품이 편의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액체나 가루 형태보다 1회 사용 기준으로 포장된 코인형 조미료가 소포장·소용량 트렌드에 부합해 수요가 전반적으로 느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데이터 분석 기업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조미료(가루, 액상, 큐브형) 시장은 2020년 2319억 원에서 지난해 2431억 원으로 증가했다. 성장을 이끄는 것은 복합 및 자연 조미료 시장이다. 복합·자연 조미료 시장은 2021년 1754억 원에서 2022년 1858억 원으로 성장한 이후 2023년 1880억 원, 2024년 1909억 원으로 증가세를 이어갔고, 지난해에는 1923억 원까지 확대됐다.
● 전 세계 ‘감칠맛’ 앓이… 칵테일에도 활용
특히 조미료 본고장인 일본에서는 최근 몇 년간 ‘다시(出汁)’가 요리를 넘어 하나의 식문화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요리에 활용되는 전통 국물인 다시를 카페에서 커피처럼 컵에 담아 즐기거나, 다시의 풍미를 앞세운 음료와 디저트가 등장하는 등 소비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영국 온라인 매체에서는 칵테일 ‘블러디메리’에 샘표의 연두를 활용한 ‘블러디 우마미 레시피’가 소개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글로벌 수요 확대에 맞춰 국내 조미료 업계도 해외 시장 공략을 서서히 넓히고 있다. CJ제일제당은 현재 일본, 몽골, 홍콩 등 아시아권을 비롯해 북미(미국), 오세아니아(호주), 남미 등 11개국에 진출해 있다. 일본에는 2014년에 진출해 ‘한국의 맛’ 다시다를 수출하고 있다. 현재 일부 ‘돈키호테’에 입점돼 있으며, 일본 코스트코 전 매장에서 시식 행사 등을 통해 입점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과 식문화가 비슷한 몽골에선 ‘쇠고기 수프’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수요가 늘고 있다. 미국에서는 프리미엄 제품을 중심으로 선보이며 다시다 활용법을 모르는 현지인과 젊은 3세 교포들을 타깃으로 반응을 살피고 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해외 조미료 시장은 아직 초기 단계로 본격적인 확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됐다”며 “해외에서 1인 가구를 중심으로 K푸드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만큼, K조미료 수요 증가도 기대해 수출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상도 해외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미 동남아를 중심으로 수출 중인 미원에 더해 지난해부터 자사 글로벌 식품 브랜드 오푸드를 통해 코인 육수 제품인 ‘맛선생 국물내기 한알’을 중심으로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서구권 시장에 선보이고 있다.
대상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K푸드 열풍이 이어지는 가운데 직접 한식을 만들어 먹고자 하는 글로벌 수요에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황진주 인하대 소비자학과 겸임교수는 “MSG 유해성 논란을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들은 요리의 실용성을 기준으로 조미료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뚜렷하다”며 “조미료를 단순히 조리 보조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취향에 따라 선택하고 즐기는 문화가 젊은 소비자층을 중심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김다연 기자 damong@donga.com
남혜정 기자 namduck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