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중 ‘리어왕’ 공연하는 극단 이야기 전쟁 속 지켜내려는 무대 넘어 인생 돌아보게 해 초연서 선생님 역 송승환, 노먼으로 분해 깊이 더해
박근형(오른쪽), 송승환. 나인스토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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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탄이 터지고, 공습 경보가 울려도 연극은 계속된다. 마치 인생처럼.
지난달 27일 개막한 ‘더 드레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영국 어느 지방에서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공연 준비를 하는 극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작품은 227번째 ‘리어왕’ 무대에 서는 ‘노배우’ 선생님과 그를 오랜 시간 보필하고 있는 드레서 노먼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수십 년간 손발을 맞춰온 그들이지만 이번 공연은 조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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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증상을 보이는 선생님은 “이 세상을 짊어져야 하는” 배우의 삶에 대해 토로하며, 무대 앞에서 벌벌 떠는 모습으로 짠한 마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이내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아 웃음을 유발한다.
그런 선생님을 살뜰하게 챙기는 이가 노먼이다. 선생님에게 타박을 들어도 “여기가 선생님 자리”라며 공연을 올리기 위해 애를 쓰는 그는 단순한 드레서가 아닌 동반자처럼 느껴진다.
배우는 부족하고, 폭격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무대 뒤 분장실을 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관객으로 하여금 공연을 완성하기 위한 배우와 스태프들의 치열함을 엿보게 한다.
극중극 형식으로 선보이는 ‘리어왕’은, 무너져 가는 선생님의 현실과 겹치며 몰입도를 한층 끌어올린다. 힘겹게 무대에 오르지만, 공연이 시작되면 그는 완전히 리어왕으로 분해 역할을 소화해낸다. 그 순간을 향해 객석에서는 뜨거운 박수가 절로 터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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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전쟁 속 포탄이 터지고 공습경보가 울리는 와중에도 연극 한 편을 무사히 올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연극을 보기 위해 몰려든 관객들을 상상해도 그렇다.
끝까지 계속돼야 하는 게 어디 연극뿐일까. 그들이 지켜내려는 무대를, 인생으로 옮겨놔도 어색하지 않다.
버겁고 지쳐도 그대로 내팽개칠 수 없고, 모두가 박수받을 수도 없다. 끝내 선생님께 인정받지 못하고 절망하는 노먼처럼 마지막까지 빛을 발하지 못한다 해도 따질 곳도 없다. 그래도 어쩌랴. 그게 인생인 것을.
극 중 여러 차례 반복되는 “버티고 살아남자”는 대사가 가볍게 들리지만은 않는 이유다. 그래서 곱씹을수록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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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배우라는 호칭이 자연스러운 송승환이 그려내는 노먼은, 존경하는 선생님을 위해 자신의 한 시절을 기꺼이 바친 인물로 더욱 애잔하게 다가온다.
공연은 3월 1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