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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6시 30분. 오전 8시부터 회의가 이어지며 한 번도 쉬지 못했다. 이메일함에는 읽지 않은 메시지가 137개 쌓였고, 내일까지 검토해야 할 데이터를 띄운 대시보드도 세 개나 열려 있다. 이때 찾아오는 공허함은 단순한 피로나 직무 번아웃과는 다르다. 디지털 환경이 만들어낸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소진(digital exhaustion)’이다.
전통적인 번아웃과 달리 디지털 소진은 관리가 열악하거나 조직문화가 나쁠 때만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다. 직원을 잘 지원하는 리더십과 건강하게 운영되는 조직에서도 충분히 나타날 수 있다. 원인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디지털 기기에 있다. 디지털 기술은 주의를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분산시킨다. 이메일, 스프레드시트, 채팅 메시지, 화상회의를 끊임없이 오가는 과정에서 뇌는 매 순간 서로 다른 신경 영역으로 혈류를 재배치해야 한다.
디지털 소진을 이기는 첫 번째 방법은 사용하는 디지털 도구의 수를 과감히 줄이는 것이다. 한 중견 소프트웨어 회사의 최고마케팅책임자(CMO) 알리시아의 디지털 사용 패턴을 분석한 결과, 그는 무려 41개의 서로 다른 디지털 도구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 가운데 약 30%는 다른 도구로도 충분히 대체 가능한 중복 기능을 제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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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에서 ‘일괄 처리’와 ‘실시간 처리’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관리자는 메시지를 처리할 때 이 두 전략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 일괄 처리는 정해진 시간대를 따로 마련해 메시지를 한꺼번에 처리하는 방식이다. 이 방법은 뇌가 하나의 처리 모드에 머물 수 있도록 해 메시지 하나당 소요되는 시간을 크게 줄이고 전반적인 효율성을 높인다. 반면 메시지가 쌓이면서 답하지 않은 일이 남아 있다는 심리적 부담을 느끼기 쉽다. 실시간 처리는 메시지가 도착하는 즉시 답하는 방식이다.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수 있고, 나중에 다시 챙겨야 할 일을 기억해야 하는 부담도 줄어든다. 그러나 그 대가로 지속적인 방해와 주의의 파편화가 발생한다.
헬스케어 조직의 최고재무책임자(CFO)인 엘레나는 두 방식 모두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설계했다. 대부분의 메시지는 정해진 시간에 일괄처리하되, 정말 긴급한 사안만 선별적으로 실시간 대응하는 방식이었다. VIP 목록에 포함된 메시지만 즉시 확인하고, 그 외 모든 메시지는 하루 세 차례 마련한 처리 시간대에 모아 처리했다. 그 결과 엘레나는 하루 동안 업무 방해를 40% 이상 줄일 수 있었다.
셋째, 기술 사용에 분명한 의도를 부여하는 것이다. 헬스케어 회사의 최고전략책임자(CSO)인 제임스는 매일 3∼4시간을 디지털 기기 앞에서 보내고 있었다. 대부분의 작업은 분명한 목적에서 시작됐지만, 곧 방향 없는 탐색으로 흐르기 일쑤였다. 해결책은 기술 사용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더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디지털 도구를 사용하기 전, 제임스는 항상 명확한 목적부터 세웠다. 각 디지털 작업 세션마다 무엇을 마쳐야 성공적으로 끝난 것으로 볼 수 있는지 명확한 완료 기준을 정해뒀다. 그는 무의식적인 사용 패턴을 끊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기, 작업 장소 바꾸기 같은 간단한 행동을 환경적 트리거로 활용해 적절한 시점에 디지털 작업에서 벗어나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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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소진은 의도적인 설계를 통해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 인공지능(AI)의 부상과 함께 몰입형 디지털 환경이 빠르게 확산되는 지금, 기술과 보다 섬세하고 의식적인 관계를 구축해 그 이점을 극대화하고 비용을 최소화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 글은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 디지털 아티클 ‘디지털 소진을 이기는 8가지 원칙’ 원고를 요약한 것입니다.
폴 레오나르디 캘리포니아대 석좌교수
정리=최호진 기자 ho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