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치·리먼 가문의 미술 후원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먼저 이 말은 ‘남의 떡이 커 보인다’의 직업적 버전으로 들린다. 돈을 다루는 은행가들은 예술을 동경하고, 반면 자유로운 영혼의 화가들은 도리어 돈 같은 현실 문제에 골몰한다고 꼬집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의 숙명 중 하나가 다른 직종에 대한 선망인데, 은행가와 예술가는 양극단의 직업세계로 서로를 충분히 동경할 만하다.
이 말을 상당히 비판적으로 풀어볼 수도 있다. 은행가들이 미술의 세계마저 전유하려 하지만, 막상 미술가들은 생계에 발목이 잡혀 움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황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성공한 은행가나 기업인이 미술에 관심을 두는 것을 부의 과시이거나 투자나 절세 같은 또 다른 재테크로 보는 시선이 존재하기에, 이 같은 해석이 지나치다고만 볼 수는 없다.
광고 로드중
진정 자본가와 미술 사이에 이상적인 공생 모델은 없을까? 돈 많은 은행가나 기업인이 아낌없이 미술을 지원한 사례가 역사적으로 없는 건 아니다. 600년 전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은 막강한 재력으로 미술가들을 발굴·육성해 르네상스라는 문화예술의 부흥기를 이끌었다. 오늘날까지 ‘미술 후원 하면 메디치’라는 공식이 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메디치 같은 가문이 많아지는 게 미술 활성화를 위한 정답 중 하나일 수 있을 텐데, 바로 이 지점에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 중인 ‘리먼 컬렉션’을 주목해 볼 만하다.
은행가의 몰락, 컬렉터의 명성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MET)의 ‘리먼 컬렉션’을 일군 은행가 필립 리먼(왼쪽 사진)과 아들 로버트 리먼. 사진 출처 하버드비즈니스스쿨 홈페이지·MET
리먼 가문을 포함해 현대의 어느 누구도 미술 후원에 관해 메디치 집안의 명성에 도전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리먼 가문이 메디치 가문과 유사한 점이 많다는 점은 짚어볼 만하다. 먼저 두 가문 모두 은행업으로 부를 쌓은 다음, 대를 이어 미술을 후원했다. 리먼 가문은 19세기 중반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 가문이었다. 이 집안이 세운 리먼브러더스는 처음에는 면화 같은 상품 거래로 돈을 모으다 뉴욕으로 이주한 뒤 은행업으로 부를 일궜다.
광고 로드중
은행업으로만 놓고 보면 메디치 가문이나 리먼 가문이 영광을 누린 시간은 짧지만 미술 덕분에 두 가문 모두 역사 속에서 긍정적으로 기억된다. 메디치 가문의 컬렉션은 이탈리아 우피치미술관의 바탕이 됐고, 리먼 가문의 컬렉션은 MET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두 미술관이 지속되는 한 두 가문의 명성은 앞으로도 건재할 것이다.
‘밥상머리’에서 키운 미술의 유산
한 가지 짚어봐야 할 점은 두 은행 가문 모두 저녁 식사 자리에서 미술 이야기를 자주 꺼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메디치 가문의 미술 후원 전설을 연 코지모 데 메디치의 경우, 화가들을 자신의 집이나 별장에 초대해 함께 식사하고 체스를 두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미술가나 문인들과 격 없이 함께하는 가풍은 그의 손자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도 이어진다.
미술에 대한 ‘밥상머리 교육’은 리먼 가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로버트 리먼은 자신이 미술을 수집하게 된 계기로 부모의 영향을 되새기며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부모님은 매년 유럽을 여행하며 그림, 태피스트리, 가구를 구입했다. … 부모님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계셨고, 마음에 드는 작품들을 사들였다.” 부모의 작품 구매 여정을 함께하며 자연스레 미술 세계에 발을 들여 놓은 셈인데, 작품 구매 후 식사 자리에는 미술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글을 시작하며 ‘은행가들은 저녁 모임에서 미술을 논한다’고 했는데, 두 가문은 확실히 이를 제대로 실천했다. 또 두 가문의 컬렉션이 국가에 기증되는 과정을 보면, 미술에 관한 이들의 대화는 투자나 과시라기보다는 좀 더 순수한 의도로 해석할 여지가 커 보인다.
광고 로드중
미술관에 들어온 개인의 저택
리먼 컬렉션은 로버트 리먼의 저택을 재현한다는 조건으로 기증된다. 현재 MET 내 전시장은 작품 배치뿐만 아니라 벽난로, 가구, 벽지 등 그의 저택 공간을 세밀하게 재구성하고 있다. 사진 출처 하버드비즈니스스쿨 홈페이지·MET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내 MET는 1970년 개관 100주년을 맞아 대대적으로 증축했다. 삼각형처럼 튀어나온 공간(원 안)이 리먼 컬렉션이 전시된 ‘리먼 윙’이다. 사진 출처 하버드비즈니스스쿨 홈페이지·MET
MET의 리먼 윙에 들어서면 기존 전시장과는 달리 개인 컬렉터의 안방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개인의 추모공간으로서 이보다 더 나은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20세기 한 미술 컬렉터의 취향이 잘 느껴지는 공간이란 찬사와 함께, 공공 재원으로 개인을 기념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도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미술 투자 다시 살아나기를
더 큰 문제는 박물관 안에서 리먼 컬렉션이 고립돼 보인다는 점이다. 전시 작품은 새로운 작품과 만나야 힘을 받는데, 기증 조건에 따라 별도의 공간에 묶여 전시되다 보니 파급력을 얻기 쉽지 않다. 앞으로 MET의 전시공간은 시대에 맞춰 빠르게 변신할 텐데, 리먼 컬렉션은 일종의 ‘고인물’이 될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 볼 때 별도의 공간이 기증자의 유지를 제대로 받드는 방식이 맞는지는 심각하게 고민해 볼 사례다.
지난해 한국 미술 시장은 불황으로 화가들의 삶도 크게 위축됐다. 새해에는 메디치나 리먼 가문과 같은 미술 투자가 다시 살아나 미술 시장에 온기가 돌고, 화가들도 돈 이야기를 조금 더 자신 있게 꺼낼 수 있는 분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든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