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화로 본 ‘말의 해’
십이지신도 중 말을 상징하는 ‘오신(午神)’.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설화에 따르면 ‘천년왕국’ 신라를 세운 혁거세는 말이 싣고 온 알에서 태어났다. 고구려를 세우고 광활한 영토를 다스렸던 주몽도 말을 잘 탔다. 이처럼 말은 우리 선조들에게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었다. ‘새 나라의 출현’을 알리고, ‘간절한 염원’을 실어나르는 상서로운 영물이었다.
●진취적 현대인에 잘 어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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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天馬圖)’.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그런데 유독, 여성에겐 말띠가 그리 반갑지 않다. ‘팔자가 세다’는 선입견이 세간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 고문헌에서도 이런 속설의 근거는 찾아볼 수 없다. 십이지 전문가인 천진기 국가유산청 무형유산위원장은 “전통적으로 말띠 여성을 꺼리는 일본의 풍조가 일제강점기에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천 위원장에 따르면 실제로 조선 왕비 중엔 정현왕후(1462∼1530) 등 말띠가 다섯 명이나 된다. 말띠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단 뜻이다. 그는 “여성의 띠로 양 등을 선호하던 관습은 진취성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현대 사회엔 맞지 않는 옛말”이라고 강조했다.
올해를 ‘붉은 말의 해’로 부르는 것도 우리 전통과 거리가 멀다. 병오년이 불(火)의 기운을 뜻하지만, 색깔과 결부해 해석하는 건 곤란하다. 하도겸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오방색을 붙여 ‘붉은 말(赤馬·아카우마)의 해’라 일컫는 문화도 일제강점기에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전통적 근거가 약할뿐더러 ‘황금돼지의 해’처럼 상업적인 성격이 짙다”고 했다.
●‘말뚝박기’도 말에서 유래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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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기마인형 ‘꼭두’.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민속박물관이 발간한 ‘한국민속상징사전―말 편’에 따르면 서울 강동구 암사동 유적과 경남 김해 패총 등에서 발견된 말의 치아가 그 근거. 김병선 제주한라대 생명자원학부 교수는 “말을 본격적으로 사육한 건 청동기 시대부터로 본다”며 “동예와 고구려엔 키 작은 과하마(果下馬)가 있었다”고 부연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뒤에도 말은 중요한 운송·이동 수단이었다. 6·25전쟁 이후 서울에선 마차와 군마가 바삐 오갔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산업화가 진행되며 ‘방해물’ 취급을 받았고, 결국 관광용 말고는 도심에서 사라졌다. 이젠 지명에서나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조선시대 목마장이 있던 서울 성동구 마장동, 자마(雌馬·암말)를 기르던 광진구 자양동 등이다.
정연학 비교문학회장은 “1950년대 말엔 말수레꾼들이 시장이나 역 근처에 있다가 짐을 실어 나르곤 했다”며 “도로에 자동차가 달리고, 우마차 통행금지 구역이 생기며 말은 도시에서 사라졌다”고 했다.
하지만 말은 여전히 우리 언어와 생활 속에서 함께한다. 더 잘하라고 재촉하거나 격려할 때 쓰는 ‘달리는 말에 채찍질’이 대표적이다. ‘말뚝박기 놀이’에서 말뚝이란 나무나 쇠기둥이 아니라 ‘말이 둑처럼 늘어선’ 모양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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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