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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박재명]새 역사 쓰는 K반도체… 대만이 간 길 봐야 할 이유

입력 | 2025-12-30 23:12:00

박재명 산업1부 차장


세밑 기업인들을 만나보면 업종과 연령을 가리지 않고 반도체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2026년, 반도체 기업들이 한국 산업사에 새로운 신기원을 세울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이 기대는 막연하지 않다. 시장과 산업계가 공통으로 주목하는 반도체 관련 두 개의 숫자가 있다.

첫 번째는 ‘영업이익 100조 원’이다. 최근 일본 노무라증권은 삼성전자의 내년 영업이익을 133조 원으로 내다봤다. 삼성전자의 주력 제품인 D램 가격은 올 초 대비 40%가량 올랐다. 생산량이 주문량을 따라잡지 못하는 실정이다. 내년까지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이 경우 세계 1위 삼성전자가 가장 큰 수혜를 볼 것이란 예측이다. SK하이닉스 역시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앞세워 비슷한 수준의 영업이익을 달성할 것이란 전망이 속속 나온다.

한국 기업들에 영업이익 100조 원은 상징적인 꿈의 숫자다. 지금까지 국내 기업의 연간 최대 영업이익은 삼성전자가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을 탔던 2018년 58조9000억 원이다. 글로벌 기업 중에서도 이 벽을 뛰어넘은 기업은 사우디 아람코처럼 확고한 독점 지위를 가지거나, 미국 애플처럼 첨단 업종에서 글로벌 패권을 쥔 소수에 불과하다. 만약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 고지에 오른다면 그것만으로 한국 산업사의 새 장을 여는 것이다.

두 번째 숫자는 ‘시가총액 1000조 원’이다. 삼성전자 시가총액은 반도체 호황과 원화 약세 등의 요인으로 30일 기준 710조 원을 넘어섰다. 주가 상승 흐름이 가팔라지면서 이 회사의 2026년 시가총액이 1000조 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하는 투자 보고서가 11월 이후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특정 기업이 시가총액 1000조 원에 도달한다는 것은 기업 하나만 잘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다. 해당 국가의 자본시장과 산업 전반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다. 미국 바깥의 제조업체인 삼성전자가 실제로 시가총액 1000조 원에 도달한다면 이 역시 한국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상징할 것이다.

하지만 잠시 시선을 반도체에서 다른 산업으로 돌려 보자. 한때 ‘넥스트 반도체’로 주목받던 배터리는 미국의 친환경에너지 정책 선회에 따라 기존 계약이 줄줄이 파기되고 있다. 석유화학과 철강은 글로벌 공급 과잉 속에서 아직 구조조정 방향조차 잡지 못했다. 일부에선 한국 산업이 반도체와 비(非)반도체로 갈리는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2026년이 진정한 한국 산업계의 신기원이 되려면 반도체의 성과를 다른 산업까지 확산시켜야 한다. 반도체 투자가 소재·부품·장비 산업으로 연결되고, 고용 증가와 지역 경제 활성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업종을 불문한 많은 기업인들이 내년도 반도체 경기 흐름을 눈여겨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만이 이미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주요 투자은행(IB)들은 올해 대만의 경제성장률을 5%대로 내다보고 있다. 대만 대표 기업인 TSMC가 인공지능(AI) 반도체의 ‘승자’로 떠오르면서 올 한 해만 매출 30% 이상 늘어난 것이 국가 전체의 도약을 이끌었다. 한국도 내년에 비슷한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성장을 한국 전체 산업 도약의 기폭제로 만들기 위한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박재명 산업1부 차장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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