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근시는 가까운 데 있는 것은 선명하게 보아도 먼 데 있는 것은 흐릿하게 봅니다. 가까우니 더 몰두하고 집착합니다. 멀면 소홀히 보아 넘깁니다. 잠재적인 가능성을 버려 버립니다. 눈앞만 쳐다보는 위축된 삶을 살면서 작은 것을 탐하고 큰 것을 잃습니다. 가까운 관계에만 깊이 빠지니 상대방의 반응에 감정적으로 지나치게 예민해서 고통을 받습니다. 이성적 판단이 아닌 감정의 폭풍에 휘말립니다. 가까이에서만 보면 상대방과 나 사이, 관계의 실체를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가끔은 멀리 두고 바라봐야 전체가 보입니다. 아니면 근시안적인 관점으로 살아갑니다.
원시는 가까운 데가 흐릿하게 보여서 늘 멀리 바라보려 합니다. 단순한 눈앞의 것도 복잡하게 받아들입니다. 거대 담론에 빠져서 가족이 눈앞에서 겪는 어려움은 외면합니다. 크고 추상적인 명제에 몰두하면서 주변의 구체적인 어려움은 사소한 일로 여기고 무시합니다. 눈앞의 인연이 소중함을 깨닫지 못합니다. 가까운 사람이 영원히 옆에 있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서 삽니다.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는 명분에 사로잡히면 자신을 아끼지도, 지키지도 못합니다. 세상의 기대와 평가에 매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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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게 조화로운 시각은 현실에 실재하지 않습니다. 세상 누구나 늘 근시, 원시, 난시를 섞어서 봅니다. 사람에 따라 기본 비율은 다르고, 같은 사람에서도 삶의 궤적에 따라 달라지며,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합니다. 균형이 잡힌 시각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결론으로 치닫기 전에 이 시점에서 어떤 시각으로 무엇을 바라보고 이해하려 하는지를 되돌아보려고 애쓰는 일이 습관이 되어 유지되도록 반복해야 합니다.
가까운 것, 먼 것, 비틀린 것, 그리고 쉽게 보이지 않는 것까지 균형 있게, 조화롭게 볼 수 있다면 삶에서 겪는 문제, 갈등,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나와 남의 관계를 넓고 깊고 가치가 있도록 관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마음에도 시력 교정과 안경 착용이 필요합니다. 초점이 풀린 흐린 눈으로 나를, 남을, 세상을 파악해서는 진정한 삶에서 멀어집니다.
정신분석도 시력 교정을 합니다. 마음의 시력을 교정시켜 나를, 남을, 세상을 보는 시각을 다듬어서 관점이 변화되도록 돕습니다. 분석을 받는 사람의 고유성에 따라 ‘마음의 렌즈’는 맞춤형으로 제작됩니다.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습니다. 새로 맞춘 안경이 어지럽다고 거절하면서 오랫동안 써 온 안경을 고집합니다. 새 안경을 쓴 상태에서 눈을 감고 저항하기도 합니다. 새것을 쓴다면서 자신도 모르게 오래된 것을 계속 씁니다.
분석가가 쓰고 있는 안경도 시력이 제대로 나오는지 점검이 필요합니다. 분석가의 안경 역시 근시, 원시, 난시를 반영한 ‘누진다초점’ 렌즈를 써서 순간적인 판단과 행위를 뒷받침하는 시력이 기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피분석자를 제대로 보고 이해하고 도울 수 없습니다. 정신분석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언어가 매개의 역할을 하지만 본질은 분석가와 피분석자 사이에서 펼쳐지는 ‘시력 교정 작전’입니다. 그러니 저항 분석, 방어 분석, 전이와 역전이 분석 등의 전략 그리고 해석, 공감과 같은 전술을 끊임없이 적용해서 피분석자의 관점 변화를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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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