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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시절 훈련 대신 클럽 전전…구석자리 밀려난 뒤 절실함 생겨”

입력 | 2025-12-30 20:51:00

LG 통합우승 이끈 염경엽 감독 송년 인터뷰
“손에 굳은살 없는 유일한 선수가 바로 나
김재박 감독 부임후 박진만 중용해 벤치로
우승 파티때 가족까지 구석자리 배정 충격
지도자 되고 실패 반복 않으려 처절히 복기
내가 잘한 건 내 위치 인정하고 반성한 것”




LG트윈스 염경엽 감독.

‘한량.’ 염경엽 프로야구 LG 감독은(57)은 ‘선수 염경엽’을 이렇게 평한다. 광주제일고-고려대를 졸업한 그는 1991년 신인드래프트 때 2차 1라운드로 태평양의 지명을 받아 그해 개막전 유격수로 선발 출장했다. 입단하자마자 주전을 꿰찼기에 모든 게 자신만만했다. 훈련보다 경기 후 나이트클럽에 가는 게 더 중요했다. 염 감독은 “약 30년 동안 프로야구계에 있으면서 손에 굳은살 하나 없는 선수를 딱 한 명 봤는데 그게 염경엽”이라고 했다.

1996년 현대가 태평양을 인수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명유격수 출신인 김재박 현대 창단 감독은 수비만 괜찮은 염 감독 대신 신인 박진만(49·현 삼성 감독)을 개막전 선발 유격수로 낙점했다. 그해 개막전에서 빠진 염 감독은 경기 시작 전 화장실로 뛰어가 눈물을 쏟았다.

여전히 반성은 없었다. 야구를 포기하고 서울 압구정동에 카페를 차리려 했다. 사기를 당한 뒤 캐나다 이민을 알아봤지만 서류 심사에서 탈락했다. 야구가 잘될 리 없었다. 염 감독은 1995년 9월 5일부터 1997년 8월 23일까지 프로야구 역대 최장인 51타석 연속 무안타 기록을 남겼다.

인생의 변곡점은 1998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현대의 축승회 자리였다. 주전이 아니었던 그와 가족은 구석 자리로 안내받았다. 염 감독은 “내 위치에 따라 가족의 자리까지 달라진다는 걸 깨닫고 절실함이 생겼다”고 했다.

쓸쓸히 유니폼을 벗은 그는 선수로 못했던 1등을 지도자로 하기로 결심했다. 프런트가 돼 구단 운영팀에서 일을 시작한 그는 ‘염경엽이 하면 다르다는 얘기를 듣자’는 목표를 세웠다.

“그 많은 기회를 내발로 걷어찬 것에 대한 후회가 컸다. 하나 잘한 건 내 위치를 인정하고 반성한 것이다. 야구는 결국 실수를 줄이는 운동이다. 선수도, 감독도 실수를 한다. 그라운드에서 이미 큰 실패를 해봤기에 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처절히 복기했다.”

운영팀장과 코치 등을 거쳐 2013년 넥센(현 키움) 지휘봉을 잡은 그는 전력이 강하지 않은 팀을 가을야구로 이끌었다. ‘염갈량’이라는 별명도 그 때 생겼다. 2018년에는 SK(현 SSG) 단장으로 한국시리즈 우승도 맛봤다. 이후 SK에서 감독으로 복귀했으나 2020시즌 팀이 9위까지 고꾸라지자 스트레스로 시즌 중 두 번이나 쓰러진 끝에 중도 사퇴했다.

“꼭대기만 보고 달려가다가 바닥을 쳤다. 한동안 ‘내가 사회생활 할 수 있을까?’ 생각할 정도로 대인기피증이 심했다. 가장 크게 배운 건 다시 겸손해져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2023년 LG 감독 취임식에서 “그동안 오만했다”고 고백한 그는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을 수석코치로 모시겠다”고 했다. 그렇게 택한 인물이 김성근 전 감독(84) 아들인 김정준 수석코치(55)였다.

부임 첫 해이던 2023년 염 감독은 LG의 29년 우승 가뭄을 끝내고 팀을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으로 이끌었다. 지난해 3위로 주춤했지만 올해 다시 한 번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내년 목표는 LG 구단 역사상 첫 한국시리즈 2연패다.

“LG에 처음 왔을 때 우승에 가까운 전력이었다. 여기서 우승 못하면 나는 능력 없는 감독이라 생각했다. 만약 우승하지 못했다면 은퇴했을 것이다. 김현수(37)가 KT로 떠난 건 아쉽지만 그래도 올해 부진했던 불펜이 성장하면 내년은 내가 부임한 이래 가장 강한 LG가 될 것이라 본다.”

염 감독은 올 시즌을 마치고 현역 사령탑으로는 처음으로 에세이집도 냈다. “내 실패를 보고 한 명이라도 생각을 바꿨으면 하는 마음에 썼다”는 이 책의 제목은 ‘결국 너의 시간은 온다’다. 그의 롤러코스터 같은 삶이 곧 이 명제를 증명한다. 프로야구에서 1000타석 이상 들어선 타자 가운데 통산 타율(0.195)이 꼴찌인 그는 올 시즌이 끝난 뒤 역대 프로야구 감독 최고액인 30억 원에 3년 재계약을 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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