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통합우승 이끈 염경엽 감독 송년 인터뷰 “손에 굳은살 없는 유일한 선수가 바로 나 김재박 감독 부임후 박진만 중용해 벤치로 우승 파티때 가족까지 구석자리 배정 충격 지도자 되고 실패 반복 않으려 처절히 복기 내가 잘한 건 내 위치 인정하고 반성한 것”
LG트윈스 염경엽 감독.
1996년 현대가 태평양을 인수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명유격수 출신인 김재박 현대 창단 감독은 수비만 괜찮은 염 감독 대신 신인 박진만(49·현 삼성 감독)을 개막전 선발 유격수로 낙점했다. 그해 개막전에서 빠진 염 감독은 경기 시작 전 화장실로 뛰어가 눈물을 쏟았다.
여전히 반성은 없었다. 야구를 포기하고 서울 압구정동에 카페를 차리려 했다. 사기를 당한 뒤 캐나다 이민을 알아봤지만 서류 심사에서 탈락했다. 야구가 잘될 리 없었다. 염 감독은 1995년 9월 5일부터 1997년 8월 23일까지 프로야구 역대 최장인 51타석 연속 무안타 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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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히 유니폼을 벗은 그는 선수로 못했던 1등을 지도자로 하기로 결심했다. 프런트가 돼 구단 운영팀에서 일을 시작한 그는 ‘염경엽이 하면 다르다는 얘기를 듣자’는 목표를 세웠다.
“그 많은 기회를 내발로 걷어찬 것에 대한 후회가 컸다. 하나 잘한 건 내 위치를 인정하고 반성한 것이다. 야구는 결국 실수를 줄이는 운동이다. 선수도, 감독도 실수를 한다. 그라운드에서 이미 큰 실패를 해봤기에 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처절히 복기했다.”
운영팀장과 코치 등을 거쳐 2013년 넥센(현 키움) 지휘봉을 잡은 그는 전력이 강하지 않은 팀을 가을야구로 이끌었다. ‘염갈량’이라는 별명도 그 때 생겼다. 2018년에는 SK(현 SSG) 단장으로 한국시리즈 우승도 맛봤다. 이후 SK에서 감독으로 복귀했으나 2020시즌 팀이 9위까지 고꾸라지자 스트레스로 시즌 중 두 번이나 쓰러진 끝에 중도 사퇴했다.
“꼭대기만 보고 달려가다가 바닥을 쳤다. 한동안 ‘내가 사회생활 할 수 있을까?’ 생각할 정도로 대인기피증이 심했다. 가장 크게 배운 건 다시 겸손해져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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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임 첫 해이던 2023년 염 감독은 LG의 29년 우승 가뭄을 끝내고 팀을 정규시즌-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으로 이끌었다. 지난해 3위로 주춤했지만 올해 다시 한 번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내년 목표는 LG 구단 역사상 첫 한국시리즈 2연패다.
“LG에 처음 왔을 때 우승에 가까운 전력이었다. 여기서 우승 못하면 나는 능력 없는 감독이라 생각했다. 만약 우승하지 못했다면 은퇴했을 것이다. 김현수(37)가 KT로 떠난 건 아쉽지만 그래도 올해 부진했던 불펜이 성장하면 내년은 내가 부임한 이래 가장 강한 LG가 될 것이라 본다.”
염 감독은 올 시즌을 마치고 현역 사령탑으로는 처음으로 에세이집도 냈다. “내 실패를 보고 한 명이라도 생각을 바꿨으면 하는 마음에 썼다”는 이 책의 제목은 ‘결국 너의 시간은 온다’다. 그의 롤러코스터 같은 삶이 곧 이 명제를 증명한다. 프로야구에서 1000타석 이상 들어선 타자 가운데 통산 타율(0.195)이 꼴찌인 그는 올 시즌이 끝난 뒤 역대 프로야구 감독 최고액인 30억 원에 3년 재계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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