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귀스트 뤼미에르(왼쪽)와 루이 뤼미에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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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12월 28일 프랑스 파리의 작은 살롱. 어둠 속 스크린 안에서 증기기관차 한 대가 하나의 점처럼 모습을 드러내더니 점점 커지며 관객을 향해 돌진하듯 다가옵니다. 불과 50초 남짓한 영상이었지만 인류는 그날 처음으로 움직이는 현실을 봤습니다. 영화의 탄생을 알린 순간이자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의 도착’이 상영된 날이었습니다.
프랑스 브장송에서 태어난 형제는 화가이자 사진작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형 오귀스트(1862∼1954)는 경영과 의학을, 동생 루이(1864∼1948)는 물리학과 기계 기술에 재능을 보였습니다. 특히 루이는 사진 건판을 개선한 블루 레이블 건판을 개발해 가족의 사진 공장을 유럽 최대 규모로 성장시켰는데 이는 훗날 영화 발명의 토대가 됩니다.
19세기 말 미국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1847∼1931)의 키네토스코프처럼 움직이는 이미지를 구현하려는 시도는 이미 있었습니다. 그러나 뤼미에르 형제의 발명은 개인이 들여다보는 장치와는 달랐습니다. 1894년 이들은 촬영, 현상, 영사를 하나로 결합한 시네마토그래프 특허를 냅니다. 가볍고 이동이 쉬운 이 장치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스크린으로 영상을 감상할 수 있게 만들어 영화를 개인적 구경거리에서 대중예술로 바꿔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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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관객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는 일화는 과장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이전에는 없던 경험 앞에서 당시 사람들은 분명 강한 충격과 경이로움을 느꼈을 겁니다. 영화는 곧 유럽과 미국, 인도로 확산되며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오늘날 ‘기차의 도착’을 최초의 영화로 볼 것인지를 두고는 의견이 갈립니다. 그러나 대중 상영을 전제로 한 상업 영화의 출발점이라는 기준에서만큼은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사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이견이 없습니다. 우리가 극장 스크린과 스마트폰 화면에서 마주하는 모든 영상은 결국 라 시오타 역으로 들어오던 그 한 대의 기차에서 출발한 셈입니다.
이의진 도선고 교사 roserain999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