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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馬)이 들려주는 말(言)…국립민속박물관 “마부작침의 해 되세요”

입력 | 2025-12-28 11:07:53

말띠해 특별전 ‘말馬들이 많네-우리 일상 속 말’
우리 일상과 민속, 신앙과 상상력 속 말 이야기
꼭두, 십이지신도, 하피첩, 무신도 등 전시



ⓒ뉴시스



말은 단순한 탈것이 아니었다. 사자(使者)를 태워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인간의 영혼을 인도하는 신성한 존재였다.

국립민속박물관 말띠해 특별전 ‘말馬들이 많네-우리 일상 속 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익숙하게 보던 말의 이미지 뒤에 숨은 신앙과 상상력, 그리고 일상의 역사를 한 자리에 모았다.

◆말, ‘길잡이’가 되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기마 인형들이 한 방향을 향새 서 있다. 모두 상여를 장식하는 인형 ‘꼭두다. 죽은 이를 저 세상을 안내하는 이 인형은 말이 어떻게 인간의 마지막 여정을 인도해왔는지 보여준다.

벽면에는 저승사자를 그린 ’직부사자도(直符使者圖)‘와 ’감재사자도(監齋使者圖)‘가 걸려 있다. 양 옆의 ’일직사자(日直使者)‘’와 ‘월직사자(月直使者)’ 인형은 각각 백마와 흑마를 타고 시간을 관장한다. 이승과 저승, 낮과 밤. 말은 경계를 잇는 존재로 등장한다.

‘무신도(巫神圖)’, ‘삼국지연의도(三國志演義圖) 10폭 병풍’, ‘십이지신도(十二支神圖)’ 등 다양한 그림에도 신성한 말들이 등장한다. 특히 ‘십이지신도’ 속 말은 중생을 보호하고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오신(午神)’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전시장 한가운데는 짧은 다리가 특징인 흰 조랑말이 관람객들을 맞는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 대여한 이 조랑말은 키 140㎝ 남짓. 과일나무 아래도 숙이지 않고 지나간다 해서 ‘과하마’라 불렸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경효 학예연구관은 “말을 단순한 승용(乘用) 동물이 아니라,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신성한 존재로 보여주고 싶었다”며 “우리나라 민속 안에 녹아 있는 말 관련 자료와, 지금은 천연기념물로 남아 있는 조랑말, 말의 안녕과 치료에 관한 내용이 담긴 ‘마의방(馬醫方)’ 같은 문헌들을 전시했다”고 설명했다.

◆세계로 확장한 ‘말의 역사’


올해 띠 전시는 국내 민속을 넘어 세계의 말 문화까지 시야를 확장한다.

말 발굽에 끼우는 편자, 행운의 상징으로 제작된 편자, 조선 후기 단원 김홍도의 ‘편자 박기’, 테오도르 제리코의 석판화 ‘플랑드르의 장제사’ 등이 나란히 놓여 한국 토종말과 서양 말의 차이, 말의 역사를 비교해 보여준다.

이 연구관은 석판화 속 편자를 박는 말과 조랑말을 비교하며 “몸이 가볍고 다리가 짧아 무거운 짐을 지고도 산을 오르며 스스로 발굽 관리가 되는 조랑말은 굳이 편자를 박지 않았다”며 “다리가 긴 말들은 달리는 용도여서 발굽이 빨리 닳아 편자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홍도의 그림 속 편자 박는 모습은 당시 왕실이나 외국 사신을 통해 외래종 말이 유입됐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덧붙였다.

◆역사 속의 ‘말, 말, 말’


전시에서는 말띠 인물들의 흔적도 함께 보여준다.

추사 김정희의 친필 서예와 인장, 다산 정약용의 ‘하피첩(霞帔帖)’과 ‘다신계절목(茶信契節目)’ 등이 전시됐다.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의 이야기는 민속 유물과 함께 4컷 만화 형식으로 구성돼 관람객 이해를 돕는다.

88서울올림픽 포스터 속 고구려 수렵도의 말, 암행어사 마패 속 말, 역참의 마방에 있던 말, 한국전쟁 당시 미 해병대 군마를 형상화한 조각 ‘레클레스’는 우리 역사와 현대 문화 속 말의 모습을 보여준다.

전시장에는 ‘따뜻한 말: 행복 메시지’ 코너도 마련됐다. 이 코너에서는 토정비결(土亭秘訣)과 사주풀이 문화의 의미를 소개하며, 관람객들이 새해를 맞아 서로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도록 했다.

토정비결은 말띠 사람들은 목표를 한 번 정하면 꾸준히 밀고 나가는 강한 의지를 지녔지만, 끝이 다소 흐트러지는 경향이 있어 시끌벅적한 활동 속에 낭비나 유흥에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당사주(唐四柱)에 따르면 말띠는 특히 부귀와 영화, 식복과 오복, 인덕과 도움 등 긍정적인 기운을 지녀 삶에서 여러 좋은 인연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운명으로 풀이된다.



◆보고, 듣고, 만들어보는 체험


박물관은 전시와 연계해 몽골 전통 악기 마두금 연주와 탱고 공연, 닥종이 편자 만들기, 양모 말 장식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장상훈 국립민속박물관장은 “이번 특별전은 사람과 말이 함께 걸어온 길과 우리 삶 속 민속문화, 말에 담긴 꿈과 기운을 따뜻한 시선으로 되돌아보는 전시”라며 “‘어떤 일이든 꾸준히 노력하면 결국 뜻을 이룬다’는 ‘마부작침(磨斧作針)’이라는 옛 말처럼 내년에는 각자가 처음처럼 꾸준히 노력해 그 뜻을 이루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전시는 내년 3월 2일까지 열린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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