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노사 모두 인상 찌푸린 ‘노란봉투법 해석’…“분쟁 막지는 못할 듯”

입력 | 2025-12-28 08:10:39

노동부, 내년 3월 법 시행 앞두고 해석지침 행정예고…1월 15일까지
‘구조적 통제’로 원청 사용자성 판단…안전·임금 등 구체적 기준 제시
‘공장 해외이전’은 교섭 대상 아니지만…정리해고 예상 시에는 가능
노동계 “불법파견급 잣대” vs 경영계 “포괄·불명확”…노사 양측 반발
전문가 “지침만으론 법적 분쟁 못 줄여”…노동부 “의견 수렴해 보완”



[서울=뉴시스] 김명원 기자 =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2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등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5.07.29. kmx1105@newsis.com


정부가 내년 3월 10일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시행을 앞두고 구체적인 판단을 담은 해석 지침을 내놨다.

하지만 경영계는 물론 법 개정에 찬성해왔던 노동계 역시 “사용자에게 책임을 회피할 여지를 넓혀준다”고 반발하면서 법 시행 후 현장 혼란을 막을 수 있을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28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노동부는 지난 26일 ‘개정 노조법 해석지침(안)’을 내년 1월 15일까지 행정예고했다.

◆사용자성 판단 핵심은 ‘구조적 통제’…공장이전에 따른 정리해고는 교섭 대상

지침은 개정법 취지인 사용자성 인정 확대와 노동쟁의 범위 확장에 맞춰 판단 기준과 예시를 담았다

우선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더라도 사용자로 볼 수 있는 핵심 기준은 ‘구조적 통제’다.

원청 사업자가 하청 소속 근로자의 근로시간이나 휴식시간, 특정 공정에 필요한 인력 수 등 근로조건의 결정권을 구조적으로 제약할 수 있다면 사용자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노동안전에 있어서는 원·하청 노동자가 같은 장소에서 근무하고, 시설·장비 등 관리·개선이 하청 사용자 단독으로는 어려운 상황이라면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될 수 있도록 했다. 작업공정·안전절차·보호장비 등 안전보건관리체계를 원청이 지배·통제하고 설비·시설도 원청 소유인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임금과 관련해서는 원청이 투입 인원과 근로시간 등을 기준으로 인건비를 사실상 결정하거나 임금 인상률, 각종 수당 기준을 직접 제시하는 경우 사용자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봤다.

개정법에 따라 노동쟁의 대상이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과 ‘사용자의 명백한 단체협약 위반’으로 확대되면서 이에 따른 판단 기준도 담겼다.

사업경영상 결정의 핵심은 ‘근로조건에 대한 실질적·구체적 변동을 초래하는지’다. 이에 따라 합병·분할·양도·매각 등 기업조직 변동을 목적으로 하는 결정 그 자체는 단체교섭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에 따른 배치전환 등 고용조정이 객관적으로 예상되는 경우 노동조합은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 예컨대 공장 설비를 해외로 이전하는 경우, 이전 결정 자체는 교섭 대상이 아니지만 그 결과 정리해고나 배치전환 등이 예상된다면 교섭 대상이 될 수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징계·승진 기준의 설정 및 변경 요구 등에 관한 이익분쟁도 노동쟁의 대상이 된다.

아울러 사용자가 단체협약 위반을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이행하지 않거나 노동위원회의 노동쟁의 조정, 지방고용노동관서의 노사교섭지도 과정에서 위반 사실이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경우도 노동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노동계 “불법파견보다 더 엄격”…경영계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불분명”

지침이 공개되자 노사 모두에서 불만이 터져나왔다.

노동계는 “사용자성 인정이 불법파견 판단보다 더 엄격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사용자 책임을 제한하고 노동쟁의의 실질적 범위를 축소할 우려가 적지 않다”며 “하청 노동자가 진짜 사장을 찾아가는 데 활용하기보다 사용자들이 사용자성을 지우는 안내서로 활용될 우려가 더 커보인다”고 밝혔다.

이들은 사용자성 판단 기준으로 구조적 통제를 강조한 데 대해 “실질적으로 원청이 하청에 대해 업무·작업 방식·인력 운용 등에 걸쳐 상당한 수준의 지휘·감독을 하는 경우에 한해 사용자성을 인정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고 비판했다.

이어 “불법파견을 판단할 때 사용하는 기준인 ‘업무의 조직적 편입 및 통제 여부’를 보완적 징표로 삼겠다고 제시한 점도 가볍게 넘길 수 없다”며 “자칫하면 개정법에 따라 원청과 교섭하고자 하는 하청·간접고용 노동자에게까지 불법파견 판단에 준하는 엄격한 기준이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역시 “불법파견 판단 요소보다 더 엄격한 것을 요구하고 간명한 사안조차 이러저러한 단서를 달거나 복잡하게 만들어 노란봉투법을 무력화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원청 사용자의 교섭거부 등 책임 회피를 줄이려면 판단이 최대한 간명하게 되도록 지침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번 지침은 사용자가 책임을 회피할 명분 만을 줄 가능성이 다분하다”며 “이 지침으로 오히려 현장의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반면 경영계는 사용자성 판단 기준이 지나치게 포괄적일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구조적 통제의 예시로 ‘계약 미준수시 도급·위수탁 계약의 해지 가능 여부’를 들고 있어 도급계약에서 일반적인 계약 불이행으로 인한 계약 해지도 구조적 통제 대상이 된다고 오해할 여지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동안전분야도 사용자 판단의 예시를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적시해 지침의 내용과는 달리 산업안전보건법상 원청의 하청 근로자에 대한 안전보건조치 의무이행까지 사용자성이 인정되는 것으로 해석될까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또 “공장 해외이전과 같은 사업경영상의 결정에 대해 정리해고, 배치전환 등이 ‘객관적으로 예상되는 경우’ 단체교섭 요구를 할 수 있다고 적시하고 있는데, 이는 불분명한 개념으로서 합병 분할 등의 사업경영상 결정 그 자체가 단체교섭 대상이 아니라는 판단기준이 형해화될 것”이라고 했다.

◆‘현장 혼란’ 막겠다며 마련했지만…전문가들 “법적 분쟁은 못 막을 것”

노란봉투법은 첫 법안 발의 이후 10여년 만에 가까스로 국회 문턱을 넘을 정도로 각계 의견이 치열하게 맞섰던 사안이다. 노동부가 이례적으로 태스크포스(TF)까지 발족해 노사 양측의 의견을 수렴한 데에는 이 같은 배경이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지침이 근본적으로 노사 분쟁을 막지는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노동법 전문가인 박지순 고려대학교 법학대학원 교수는 “어느 정도 노사 의견의 절충을 도모한 차선책이 아니겠느냐”면서도 “(지침을 만들기 위한) 충분한 사례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예시로 들고 있는 것은 전부 하급심 판결인데, 하급심으로 법을 해석하는 지침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갈등은 어차피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노동위원회든 법원이든 판단을 할 때 지침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고민 내용들을 고려해서 합리적인 노사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하는 판결들이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형 로펌에서 인사노무를 담당하고 있는 A변호사 역시 이번 지침으로 법적 분쟁 자체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니 아무래도 사용자 쪽에서는 긴장하는 것 같다. 세미나 요청이나 법 해석 등 요청이 많이 들어오고 있다”며 “노동위원회에 조정신청을 하는 것으로 (분쟁이) 시작될 텐데 아무래도 노동쟁의 범위를 확대하려는 노동부의 입장을 많이 반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한 노동계 관계자도 “어떤 지침이 나오더라도 어느 한쪽은 반발할 수밖에 없고, 결국 법원 판결이 확정돼야 수긍을 할 것”이라며 “모든 사례를 다 대비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라고 말했다.

◆반박 나선 노동부…“행정예고 기간 동안 대안 충분히 보완할 것”

이런 가운데 노동부는 논란이 확산하자 27일 설명자료를 통해 노사 우려를 반박했다.

특히 노사 교섭 대상이 되는 공장 해외이전과 같은 사업경영상 결정에 따른 정리해고에 대해 “결정과 동시에 배치전환 등이 동시에 발표되거나 정리해고 등의 시기·방식이 검토 중이거나 결정되었음이 대외적으로 확인되거나, 당시 기업의 경영 사정이나 객관적인 상황에 비춰 사업장 폐지 등으로 타지역 배치전환 등이 불가피한 경우 등이 해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지침이 현장에서 확대 해석되지 않도록 교섭지도 등을 지속하겠다”고 했다.

하급심 판결만 가지고 지침을 만들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해석지침에서 제시한 판결들은 법 개정 이전에 원청의 근로조건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을 인정한 사례들”이라며 “국회가 해당 판결들의 법리를 입법화한 것이므로 이러한 문제제기는 합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행정예고 기간 동안 노사 및 전문가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합리적인 대안은 보완해 현장 수용성을 높이는 등 노조법의 원활한 현장 안착을 지원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