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비치발리볼 국가대표 신지은이 강원 고성군에 있는 전용 훈련장에서 몸을 던져 공을 살려내고 있다. 한겨울 찬 바닷바람 속에서도 훈련을 멈추지 않는 신지은의 목표는 내년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는 것이다. 고성=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백사장과 그 너머로 펼쳐진 푸른 바다. 공을 향해 팔을 뻗으면서 몸을 내던지자 땀에 젖은 운동복에 모래알이 달라붙었다. 한여름 해변 풍경이 아니다. 한국 비치발리볼 국가대표 신지은(24)은 한겨울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꿈을 향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었다.
2026 나고야-아이치 아시안게임 출전을 노리는 신지은의 하루는 바쁘게 돌아간다. 오전엔 강원 고성군 체육회 소속 장애인 체육지도자로 근무하고, 오후엔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비치발리볼 훈련에 매진한다. 최근 고성군의 한 해변에서 만난 신지은은 “요즘은 하루가 짧다고 느낄 틈도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18일 강원 고성군 간성읍 공현진1리해변에 설치된 비치발리볼 연습장에서 비치발리볼 국가대표 신지은 선수가 겨울철에 맹연습을 하고 있다. 고성=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실업 배구팀 선수 출신 어머니를 둔 신지은은 대구여고를 다닐 때만 해도 프로배구팀 입단이 꿈이었다. 하지만 대구에서 열린 비치발리볼 국제대회를 관람한 게 인생의 항로를 바꿨다. 프로배구 드래프트 참가신청서를 제출하는 순간에도 비치발리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때마침 김연 전 비치발리볼 국가대표팀 감독(54)으로부터 ‘비치발리볼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았다.
선뜻 전향을 결심했지만 첫 발걸음부터 벽에 부딪혔다. 전문적인 비치발리볼 교육을 받기 위해 중국 유학을 계획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무산된 것이다. 신지은은 비치발리볼을 포기하고 체대 편입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경일대에 비치발리볼팀이 창단하면서 본격적인 선수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18일 강원 고성군 간성읍 공현진1리해변에 설치된 비치발리볼 연습장에서 비치발리볼 국가대표 신지은 선수가 겨울철에 맹연습을 하고 있다. 고성=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비치발리볼은 두 명이 공격과 수비, 서브와 리시브를 모두 책임져야 한다. 이 때문에 상대의 허를 찌르는 변칙 공격이 중요하다. 신지은은 “고교 시절 ‘공수 겸장’ 역할을 하는 아웃사이드 히터로 뛴 경험이 적응에 도움이 됐다”고 했다. 여자 배구 선수치고는 작은 키(171cm)를 보완하기 위해 민첩성을 키우는 훈련을 꾸준히 한 것도 자산이 됐다.
차근차근 기량을 키운 신지은은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출전에 성공했다. 하지만 결과는 4전 전패 예선 탈락이었다. 신지은은 “태극마크를 달고 아시안게임에 나갔다는 자부심보다 씁쓸함이 컸다. 대회 두 달 전 파트너가 바뀌어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고 회상했다.
신지은은 비치발리볼 선수 생활을 하면서 수차례 파트너가 바뀌었다. 비치발리볼은 국내에 실업팀이 없다. 고정 수입이 없는 선수는 어렵게 국제대회 참가비용을 직접 마련해야 한다. 열악한 환경을 견디지 못한 신지은의 파트너들은 하나 둘 운동을 포기했다.
신지은은 햄버거 가게와 스키장 아르바이트, 중학교 스포츠 강사 등 닥치는 대로 일하며 훈련 비용을 마련했다. 한때 국가대표 딸을 자랑스러워하던 부모님마저 “지은아, 이 종목은 한국에서 할 수 없어”라며 딸을 만류했다.
신지은 역시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끝난 후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비치발리볼과의 이별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기적처럼 관심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방송에 출연해 자신을 알리기 시작하면서 후원사까지 생긴 것이다. 신지은은 “위기 때마다 어떻게든 길이 열리는 것을 보면 정말 운명인 것 같다”고 말했다. 올초엔 대한배구협회와 고성군이 힘을 합쳐 강원 고성군에 국내 1호 비치발리볼 전용 훈련장도 마련했다. 신지은 등 대표팀 선수들은 김남성 대표팀 감독(73)의 지휘 아래 해변과 고성생활체육관을 오가며 내년 아시안게임을 준비하고 있다.
신지은의 목표는 아시아배구연맹(AVC) 비치 투어 등 국제대회를 통해 실전 경험을 쌓은 뒤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는 것이다. 신지은은 “이제는 오기로 버티고 있는 것 같다. 부모님 앞에서 ‘내가 결국 해냈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싶다”고 했다.
고성=한종호 기자 hj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