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MOU로 합의한 핵잠-핵재처리 사업 트럼프라서 가능한 ‘비확산 룰’ 파기 혜택 원전 불안해하는 정부가 핵경쟁에 발 담가 핵잠수함 갖춘 핵농축 국가가 최대치일듯
김승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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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총리실 당국자가 핵무기 보유 필요성을 거론한 것이 예사롭지 않다. 핵무기를 만들지도, 갖지도 않고, 밖에서 들여오지도 않는다는 ‘비핵 3원칙’을 손보겠다는 구상을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일본은 미국 전술핵을 반입하거나 공유하는 걸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비핵 모범국인 일본이 이럴 정도로 전 지구적 핵안보 질서는 불안정해졌다. 유럽에선 러시아발 위기와 도널드 트럼프의 돌변이 기폭제가 됐다. 미국 핵우산이 사라지는 걸 가정해 ‘유럽만의 핵우산’ 구축론에 독일과 프랑스가 팔을 걷고 나서고 있다. 동북아에선 북한이 핵선제공격 독트린을 만들고 휴전선 부근에 전술핵을 배치했다.
한국도 그 흐름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 경주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핵추진 잠수함 건조와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에 나서는 두 가지 기회를 잡았다. 나랏돈 3500억 달러 대미 투자에 대한 반대급부로 정부가 기회를 제대로 포착한 것이니 국민들은 박수를 보낼 만하다. 사실 핵잠과 재처리는 바이든, 오바마, 부시처럼 여느 미 대통령은 이런 핵 확산 금지 원칙을 허무는 일에 동의하지 않았을 일들이다. 현금 투자 유치에 눈이 어두워지고 핵질서에 관심이 작은 트럼프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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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핵물질 부문 양해각서(MOU)는 모호하다. “농축과 재처리로 이어질 절차를 미국이 지지한다”고만 표현했는데, 제대로 동의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이 합의로 한국에 핵발전소 연료를 자급하는 등 상업용 핵활동을 모색해 볼 수 있게 됐다. 농축과 재처리가 충분히 보장된다면 핵무기 개발 직전 실력이라고 평가받는 일본 독일 이란 등에 버금갈 수 있게 된다.
협상에 걸림돌이 있다면 미국 국무부 에너지부에 넘쳐나는 비확산 매파(원칙주의자)의 반대다. 그래서 트럼프라는 ‘우리 편’이 퇴임한 이후까지 핵물질 협상이 계속된다면 결과를 낙관하기 힘들 수도 있다. 결론 없이 흐지부지 끝나지 말란 법이 없다. 미 정부 내 비확산파는 한국의 핵무장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절대 핵무기는 안 만들겠지만, 그래도 언제든 핵무장할 직전 단계까지는 가 있어야 북핵에 대응할 수 있다”는 주장이 국내에 생겨나고 있다.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도 그중 하나다.
1945년 오펜하이머가 미국서 개발한 핵무기는 이젠 범접 못 할 기술이 아니다. 미국은 핵 비확산 체제를 만들어 비교적 잘 틀어막았다. 그럼에도 인류 멸망을 가리키는 핵시계는 지금을 자정(멸망 시점) 90초 전이라 말한다. 러시아와 미국이 만든 근년의 핵 불안은 그 시계를 85초 전으로 5초 더 흘러가게 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래서 묻게 된다. 핵잠수함과 핵물질 생산에 나서기로 한 이재명 정부가 그리는 한반도 핵의 미래는 어떤 건가. 10년쯤 뒤 완성될 우리 핵잠은 좁은 한반도 해역에만 머물 것인지, 미국의 북태평양 전략의 한 축을 담당해 중국 견제 역할을 할 것인가. 민간 원전에도 알레르기를 느끼는 민주당 정부가 과연 어떤 비전을 갖고 농축과 재처리를 기획한 것인가. 이건 이재명 정부에 던지는 질문일 뿐만 아니라 미지의 세계로 나서게 되는 한국 사회가 스스로에게 묻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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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련 논설실장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