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효찬 노키아코리아 최고기술책임자(CTO) / 출처=노키아코리아
전 세계 통신산업은 큰 변곡점에 서 있다. 인공지능(AI)은 더 이상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네트워크가 구축·운영·진화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생성형 AI, 클라우드 서비스, 몰입형 사용자 경험으로 인해 모바일 데이터 트래픽이 급증하면서, 기존의 5G는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이제는 속도만 빠른 네트워크가 아니라, 지능적이고 유연하며 미래의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의 많은 기업은 여전히 5G NSA(비단독모드, 5G 서비스를 제공할 때 기존의 LTE망과 5G 망을 함께 사용하는 방식)에 머물러 있다. 5G의 잠재력을 온전히 실현하는 5G SA(단독모드, 5G망만 단독으로 사용하는 방식) 도입은 주춤한 상황이며, 일부 기업은 6G 상용화를 기다리며 SA 전환을 미루고 있다. 또한 FDD(주파수 분할 이중화 방식, 네트워크 송수신에 서로 다른 주파수 대역을 할당해 동시에 양방향 통신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 대역 등 신규 주파수 투자에 대한 망설임까지 겹치며 발전 속도는 느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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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주요 통신사들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AI 기반 자동화를 빠르게 도입하고, 6G 시대에 대비한 인프라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의 대형 통신사 티모바일(T-Mobile)은 글로벌 기업들과 함께 업계 최초 수준의 AI-RAN 이노베이션 센터를 구축 중이며, 버라이즌(Verizon)은 AI 기반 RAN지능형 컨트롤러(RIC)를 도입해 다수 벤더 환경에 적용해 네트워크 성능과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고 있다. 한국이 현 상태에 머문다면 AI 기반 서비스 수요가 폭발하는 시점에 소비자와 기업은 ‘뒤처진 네트워크’를 마주할 위험이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19일 “AI 시대에서 하루가 늦으면 한 세대가 뒤처진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분명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사례로, 노키아(Nokia)는 글로벌 AI 인프라 기업과 손잡고 약 10억 달러(약 1조 47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며 새로운 ‘AI-RAN’ 플랫폼을 선보였다. 이러한 협력은 통신사가 어떻게 네트워크를 미래지향적으로 고도화하고, 고객 경험을 개선하며, 새로운 서비스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AI-RAN이란 무엇인가
AI-RAN(AI 기반 무선접속망, 기지국)은 지능형 연산 기능을 네트워크의 가장 밑단인 기지국에 직접 탑재하는 개념이다. 기존 기지국이 단순한 신호를 주고받는 ‘전송탑’ 역할에 그쳤다면, AI-RAN은 이러한 기지국 내부나 인접 지점에 AI 연산이 가능한 CPU, GPU와 같은 고성능 컴퓨팅 자원을 추가로 배치한다. 이를 통해 네트워크는 무선 자원 배분, 에너지 최적화, 커버리지 조정, 트래픽 관리를 실시간으로 수행하며 스스로 최적의 판단을 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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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면, AI-RAN은 단순한 선택 사항이 아니라 미래 네트워크의 ‘핵심 기반’ 기술이다.
왜 AI-RAN, 5G SA, NR-FDD가 중요한가
AI-RAN과 5G SA, NR-FDD(5G NR주파수 분할 이중화 방식)에 대한 투자는 단순히 ‘트렌드 따라가기’가 아니다.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AI-RAN은 확장성, 효율성, 엣지 컴퓨팅을 바탕으로 지능형 네트워크의 토대를 구축한다. 5G SA는 차세대 코어 및 무선 구조를 기반으로 네트워크 슬라이싱, 초저지연과 같은 고급 기능을 구현하며 엔터프라이즈급 서비스를 지원한다. 이는 IoT 및 증강현실(AR) 등 AI 기반 서비스에 필수적인 핵심 기술이다.
NR-FDD는 특히 LTE 주파수를 재배치하여 커버리지와 신뢰성을 높이는 기술로, 소비자와 기업 모두에게 중요하다. LTE 가입자가 기존 편의성과 혜택을 유지하면서도 5G 커버리지를 넓히고, 높은 업링크 품질과 전용 경로를 확보하려면 일부 LTE 대역을 NR-FDD로 전환하는 방안을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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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이미 움직이고 있다
한국과 달리 미국의 티모바일(T-Mobile)은 이미 전국 규모의 5G SA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있다. 이 통신사는 처음부터 AI 아키텍처 기반으로 설계된 SA 인프라를 바탕으로 최근 5G-어드밴스드(5G-A) 서비스를 출시했다.
글로벌 리서치 기관인 ‘시그널 리서치 그룹(SRG)’의 테스트 결과에서도 FDD와 TDD(시분할 이중화 방식, 네트워크 송수신에 동일한 주파수를 사용하지만, 시간을 기준으로 나누어 번갈아 가며 통신하는 기술) 주파수 대역을 결합하는 방식이 뚜렷한 강점을 가진다는 점이 확인됐다. 예를 들어 저대역 FDD로 커버리지를 확보하고, 중대역 TDD로 용량을 늘리는 ‘FDD-TDD 주파수 집성(FDD-TDD Carrier Aggregation)’ 기술이 엣지 단에서도 우수한 성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커버리지와 용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실제 네트워크 환경이 다양하더라도, 기존 구조를 벗어난다면 충분히 커버리지와 용량을 모두 확보할 수 있음을 시사하며, 한국 통신사들에게도 유용한 참고 모델이 될 것이다.
협력은 혁신을 가속화한다
네트워크 기업과 AI 인프라 기업 간의 파트너십은 단순한 ‘홍보성 발표’가 아닌 전략적 필수 요소다. 앞서 언급한 최근의 협력 사례들은 AI 최적화 하드웨어와 유연한 RAN 소프트웨어, 네트워크 통합 역량을 하나로 결합하려는 시도다. 이를 통해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통신사들은 이미 검증된 글로벌 혁신 솔루션을 도입함으로써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개발해야 하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지능형 네트워크는 이제 미래의 개념이 아닌 현실이다. 이를 신속히 도입할수록 안정적이고 고성능이며, 수익 창출까지 가능한 네트워크 연결성을 선점할 수 있다.
내일의 네트워크를 향해
중요한 변곡점에 서 있는 지금, 우리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 NSA 방식에 안주하거나 주파수 제도 개편을 미루거나, AI-RAN 도입을 외면하며 혁신을 늦춘다면 귀중한 기회를 그만큼 늦어진다.
한국은 발전된 시장 환경과 기술 수용도가 높은 소비자, 견고한 규제 체계를 갖추고 있어 변화를 선도할 잠재력이 충분하다. 하지만 그 잠재력은 지금 투자하겠다는 선택이 있어야만 현실이 된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단순히 더 빠른 네트워크가 아니라, 더 똑똑하고 효율적이며 미래의 요구에 대비된 네트워크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주저하지 말고 AI-RAN, 5G SA, 그리고 NR-FDD를 과감하게 도입해야 한다.
글 / 한효찬 노키아코리아 최고기술책임자(CTO)
한효찬 노키아코리아 CTO는 한국 통신산업에서 30년 이상의 기술 영업과 고객 관리, 사업 개발 경험을 보유했다. 과거 노키아코리아의 모바일 네트워크 책임자였으며, 통신사 고객을 위한 다양한 영업의 리더 직책을 역임했다. 2008년 노키아 한국 지사가 다시 문을 열 때 노키아에 합류했고, 2010년 ‘RAN 솔루션 리드’로 한국의 4G 시장 진출에 기여했다. 이후 LG유플러스 고객팀의 책임자를 거쳐 한국 지사의 리더십 팀에 합류했다. 모바일 네트워크 프리세일즈 코리아의 책임자로서 5G 시장 개발을 이끌었다. 노키아에 합류하기 전 에릭슨 LG, SK 텔레콤, 현대전자에서 근무했다.
IT동아 김예지 기자 (yj@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