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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의 기억이 좋아야 좋다[내 생각은/임명호]

입력 | 2025-12-17 23:06:00


연말이다. 이맘때 이곳저곳에서 강의하며 필자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하루의 끝이 좋아야 행복하고, 한 주의 주말이 좋아야 행복하며, 한 해의 연말이 좋아야 행복하다는 것이다.

행복과 기억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꼭 만나야 하는 학자가 대니얼 카너먼이다. 카너먼의 대장내시경 실험은 행복과 고통에 대해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A 집단 환자들은 약 24분간 검사를 받았고, 가장 아팠던 순간의 고통 점수는 8점, 검사 끝부분의 고통 점수는 1점 정도였다. B 집단 환자들은 검사에 약 8분 걸렸지만,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은 동일하게 8점이었고, 검사의 끝부분은 6점 정도로 높았다.

이 실험의 교훈은 첫째, 우리가 고통과 불행을 기억할 때 가장 아팠던 상황과 끝의 상황만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둘째,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뎠는지 금방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음반을 한두 시간 정도 듣다가 끝부분에서 음반이 ‘찌직’ 하는 굉음을 내며 튀어버렸다면, 우리는 사실 음악 감상을 통째로 망친 것이 아니라 음악 감상에 대한 기억을 망친 것이다. 30년간 행복하게 부부 생활을 했지만 마지막 1년을 싸우다 이혼했다면, 우리는 쉽게 결혼 생활에 실패했다고 말한다. 행복하게 지낸 29년 이상의 기억이 망각된 탓이다.

필자는 의대생들의 개인 발표 수업을 수년간 진행했는데, 의외로 고된 생활에 대해 대부분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고교 생활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카너먼에 따르면 한 생에서 약 6억 개의 순간을, 한 달에 60만 개의 순간을 경험한다. 우리는 그중 몇 개 정도를 기억하고 있을까.

직장 생활에서 몸이 고되고 마음이 힘들다면, 특히 하루의 끝 시간과 한 주의 끝날에 한두 개라도 좋은 기억을 만들려는 노력을 해 보길 바란다. 자신과 가족, 친구들에게 작은 위로와 선물을 주는 기억도 좋겠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유난히도 다사다난했던 한 해다. 끝이 좋아야 한다. 끝의 기억이 좋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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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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