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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군사제도는 급료가 없는 부역병 체제였다. 후기에 급료병이 생기지만, 이들의 급료는 정확히 월세 비용밖에 되지 않았다. 조선 정부는 생계를 위해 병사와 이들의 가족이 시장에서 장사하는 것을 허용했다. 이것은 조선 후기 서울에서 시장 발전과 사회 변동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군인과 상업 발전은 의외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고대 로마제국에서도 병사들의 급료가 부족했다. 해외에 주둔하는 군단의 숙영지 주변에는 상인들이 몰려들었는데, 병사들은 주 소비자이기도 했지만 생계를 위해 직접 물건을 팔기도 했다. 전략적 요충지는 곧 교통의 요지다. 군단은 이런 곳에 자리 잡았고, 여기서 도시가 성장했다. 영국 런던, 프랑스 오를레앙, 독일 프랑크푸르트, 쾰른 등 이렇게 번성한 도시는 지금도 유럽의 주요 도시를 이루고 있다.
병사들이 판매하는 물품 중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이 전리품이다. 좋게 말해 전리품이지 실상은 약탈품인데, 로마제국에는 병사들이 전리품을 판매해 얻는 수익에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는 법이 있었다. 전리품 약탈은 명령으로 허용될 때만 가능했다. 즉, 평화 시 혹은 명령에 없는 약탈은 말 그대로 폭력이고 불법 행위였다. 그러나 전리품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기 쉽지 않다는 게 법의 맹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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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상의 불의와 부조리와 싸워야 하지만, 법이 만능은 아니다. 목적이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인간의 지혜는 부족해서 역사는 어리석은 법으로 가득 차 있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