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피 속도전이 초래한 ‘빚투’ 발언 집값 서둘러 잡으려다 통계조작 논란 산업계 반대에도 탄소중립 목표 과속 성급한 정책 조장(助長) 부작용 클 것
박중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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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주가 예측 실패 사례로 기록된 인물은 1920년대 미국 예일대의 자랑이었던 ‘계량경제학의 창시자’ 어빙 피셔 교수다. 주식투자자로도 유명했던 그는 1929년 10월 투자자들 모임에 참석해 “이제 주가는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고원(高原)에 이르렀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로부터 열흘 뒤 다우존스평균주가가 하루 만에 30% 이상 폭락했는데, 바로 대공황의 시작을 알린 ‘검은 목요일’이었다. 한 달 후에도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회복이 머지않았다”고 장담했는데, 그로부터 3년간 주가는 10분의 1로 떨어졌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이달 초 “빚투도 레버리지의 일종”이란 발언으로 곤욕을 치렀다. 코스피가 4,221.87의 사상 최고가를 찍은 다음 날인 4일 라디오에 나와 “그동안 빚투를 너무 부정적으로만 봤다” “(코스피 5,000은) 당연히 가능하다”고 했다. 당일 2.37% 하락을 시작으로 주가는 보름째 요동치며 투자자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무리한 투자를 말려야 할 사람이 빚투를 부추겼다’는 야당 의원들의 질책에 그는 결국 국회에서 사과해야 했다.
주가 예단의 함정을 잘 아는 금융 관료가 자신의 실수가 경제 교과서에 ‘박제’될 위험을 감수하며 선 넘는 발언을 한 건 이재명 정부의 ‘코스피 5,000 공약’을 빼고 설명할 수 없다. 주가가 정책목표가 되면서 정권 향배의 영향을 많이 받는 공무원 영혼 안의 ‘위기회로’가 멈추고, ‘희망회로’만 작동했을 거란 해석이 가능하다. 미국 금융계의 인공지능(AI) 과잉투자에 대한 우려, 고환율을 피하기 위한 외국인의 증시 이탈 가능성이 눈에 제대로 들어왔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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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통계 공표 일자가 15일이고, 하루 전 대책이 결정돼 어쩔 수 없었다는 국토부 변명이 궁색하게 들리는 건 “하루 늦춰 ‘10·16 대책’을 내놓을 순 없었나”라는 반론이 더 설득력이 있어서다. 집값 상승세가 인접 지역으로 번지는 ‘풍선효과’를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의욕 과잉이 낳은 사달로 보인다. 개혁신당이 제기한 행정소송에 대해 김윤덕 국토부 장관은 “만약에 진다면 (해당지역 규제 해제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환경 정책의 과속은 더 심하다. 정부는 최근 ‘2035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확정해 발표했는데 2018년 배출량 대비 최소 53%, 최대 61%를 줄이는 내용이다. ‘세계 6위 제조업 강국’ 위상을 유지하려면 48%를 넘겨선 안 된다는 산업계 호소를 한참 뛰어넘는 것이어서 충격을 줬다. 전기요금 인상, 막대한 탄소 저감 투자가 불가피해 향후 10년 이상 이어질 대미 투자, 중국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기업들이 버텨내기 어렵게 됐다.
이 안건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키면서 이 대통령은 “일부 고통이 따르더라도 지속 가능한 성장, 글로벌 경제 강국으로의 도약을 위해 반드시 가야 할, 정말로 피할 수 없는 길”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 온실가스 40% 감축목표가 담긴 ‘2030 NDC’를 발표할 때 “매우 도전적인 과제이지만,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한 것과 판박이다. 실제로는 탄소중립을 주도해 온 유럽연합(EU)에서 성장의 발목을 잡는 온실가스 목표를 재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미국은 아예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했다. ‘합리적 실용주의’를 표방하는 정부라 뭐 하나라도 다르길 기대했던 기업들의 실망이 클 수밖에 없다.
대선 공약은 5년 안에 달성하면 되는 목표다. 후유증이 클 2030세대의 빚투까지 부추기며 당장 코스피를 5,000 선까지 끌어올릴 이유가 없다. 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평가는 규제를 하루 이틀 먼저 하느냐가 아니라, 5년 내내 얼마나 착실히 아파트를 지어 공급하느냐에 달렸다. ‘잠재 성장률 제고’를 최고 목표로 하는 정부라면 환경주의자들의 근본주의적 주장보다 기업들의 합리적 요청에 더 귀를 기울여 과속을 막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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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