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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안 바싹 마른 왕도 찾은 ‘먹는 가습기’ 수세미[이상곤의 실록한의학]〈168〉

입력 | 2025-11-17 23:11:00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가을이면 시골집 마당은 온통 덩굴로 뒤덮여 한 폭의 그림처럼 예쁘다. 빨랫줄을 타고 힘차게 뻗어 오른 줄기마다 주렁주렁 열린 수세미 열매는 보기만 해도 생명력이 넘친다. 한의사인 아들이 약재로 쓸 수 있게 어머니가 마당 한쪽에 공들여 심어둔 수세미(사과락)다.

요즘 들어 수세미 추출물이 해열·소염 작용과 피부 진정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피부 트러블이나 부종 완화에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러나 한방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약효를 인정해 약재나 치료용 차로 활용해 왔다. 심지어 조선 시대에는 임금의 성난 피부를 가라앉히고 열을 내리는 데도 사용됐다. 순조는 즉위 첫해 수두에 걸렸을 때 여러 처방과 함께 말린 수세미로 달인 사과락 차를 마시고 효험을 봤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순조는 11세에 왕위에 올랐다. 아버지 정조가 47세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순조는 즉위 후 증조부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고, 이후에는 장인 김조순의 섭정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허수아비 임금’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순조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승정원일기에는 “성궁(聖躬)의 노고는 이미 말할 수 없지만, 정사를 펼치기 위해 정전이나 편전에 나와 앉았을 때 그 일을 끝낸 적이 없으며 ‘출궁이나 환궁 때는 매번 허둥대며 급히 서두른다’는 탄식이 (신하들 사이에) 나오고 있습니다”라고 기록돼 있다.

승정원일기에 드러난 순조의 병증은 ‘좌불안석’에 가까웠다.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 만큼 불안하고 초조한 신경증을 앓았다는 이야기다. 순조는 입안이 바싹바싹 마를 정도의 고통을 호소했는데 수세미로 달인 차를 복용한 뒤 증상이 크게 완화됐다.

수세미는 성질이 대체로 차고 매끄러워 피부와 눈, 코, 입을 촉촉하게 만들어 준다. 뿌리를 잘라 보면 수액이 풍부하게 흘러나오는데 피부 클렌징에 활용할 수 있을 정도다. 예전에는 연한 수세미를 삶아 채소 반찬으로 먹기도 했고, 완전히 마른 수세미는 속을 비워 부엌에서 그릇이나 과일을 닦는 데 썼다. 수세미는 몸속, 특히 코점막 내 노폐물을 제거하는 데 도움을 준다.

코는 한번 호흡할 때 20만 개 이상의 이물질이 쏟아져 들어온다. 바이러스와 세균 같은 병원체까지 침입하는데, 이를 걸러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코점막 속의 점액이다. 점액은 수분이 주성분이지만 각종 면역 효소가 포함돼 있어 강력한 방어 작용까지 한다. ‘건강한 개를 사려면 코가 촉촉한 강아지를 사라’는 말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생활의 지혜다.

날이 쌀쌀해지면 강물이 줄고, 여름에 축축하던 땅도 건조해진다. 인체 역시 자연의 변화를 따라가며 서서히 마른다. 벌써 가습기를 켜놓은 집도 보인다. 이 시기에는 콧물과 재채기가 쉽게 나고 피부에도 여러 이상 증상이 나타난다. 눈도 건조해져 조금만 바람이 스쳐도 따갑고 눈물이 고인다.

수세미는 매끄러운 수액으로 점액을 보충해 노폐물을 씻어내고, 찬 기운으로 열을 내려 염증을 없애기도 한다. 특히 명나라 때 편찬돼 조선에서도 널리 인용된 의서 ‘의학정전(醫學正傳)’에는 코에 염증이 생기거나 누런 콧물이 흐를 때 혹은 코가 막혀 냄새를 맡지 못할 때 수세미를 복용하면 효과가 좋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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