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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박힌 유니폼 자랑스럽게… 맨날 지는 팀, 싹 고쳐야죠”

입력 | 2025-11-15 01:40:00

‘女농구 데뷔’ 하나銀 이상범 감독
20년 넘게 男프로농구 지도자 생활… 日 코치-KBL 구단 단장 고민하다
하나銀 단장 삼고초려에 마음 바꿔… “우리 선수들 얼마나 잘할지 궁금”



이상범 하나은행 감독(가운데)이 10일 서울 메이필드호텔에서 열린 2025∼2026 여자프로농구(WKBL) 미디어데이 행사 포토타임 때 양인영(왼쪽), 김정은과 포즈를 취했다. 남자프로농구(KBL)에서 20년 넘게 지도자 생활을 했던 이 감독은 KBL 우승 감독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WKBL 사령탑 데뷔를 앞두고 있다. 뉴시스


이상범 여자프로농구(WKBL) 하나은행 감독(56)은 슬하에 딸만 하나 있다. 그런데 요즘 입버릇처럼 ‘아이들’을 찾는다. 돌봐야 할 ‘딸’이 갑자기 열다섯 명 더 생겨서다. 2001년 SBS(현 정관장) 코치를 시작으로 2023년 DB 감독에서 자진 사퇴할 때까지 이 감독은 20년 넘게 남자프로농구(KBL)에서만 지도자 생활을 했다. 그러다 올해 처음 WKBL 무대에서 사령탑을 맡게 됐다.

이 감독은 2011∼2012시즌 정관장 전신인 KGC인삼공사에서 KBL 정상을 차지한 적이 있다. KBL 우승 경력이 있는 감독이 WKBL에 발을 들인 건 이 감독이 처음이다. 평생을 남자농구에만 빠져 살았던 이 감독 자신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하나은행 지휘봉을 잡기 전까지 이 감독은 WKBL 경기를 제대로 본 적도 없었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도 이 감독은 일본프로농구(B리그) 2부 리그 팀 코치와 KBL 구단 단장 자리를 제안받고 행선지를 고민 중이었다.

하나은행에서 김창근 단장이 처음에 ‘차 한잔 마시자’며 찾아왔을 때도 이 감독은 여자 팀 사령탑에 어울리는 후배들을 추천만 해줬다. 김 단장이 ‘팀을 맡아 달라’고 다시 찾아왔을 때도 사양했다. 하지만 김 단장의 ‘삼고초려’에 마음을 바꿨다.

이 감독은 “‘내가 뭐라고 이분이 이러실까’ 싶었다. 또 ‘나도 여자 선수를 한번 키울 수 있을까? 진짜 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표가 있었는데 한번 도전해보자는 오기가 발동됐다”라고 했다.

그리고 계속해 “주변에서는 남자 팀 단장 자리를 추천한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아직은 현장에 마음이 더 끌렸다”면서 “현장이 당연히 더 힘들지만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스릴이 있다. 내가 지휘하는 선수들이 움직이고 성장하는 데에서 오는 매력이 크다. 한번 느껴보면 끊기가 힘들다”고 덧붙였다.

이 감독이 현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면서 하나은행에 ‘필요조건’으로 내세운 게 정선민 코치(51) 영입이었다. 2016년까지 하나은행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던 정 코치는 2021년부터 3년 동안 여자 대표팀 감독을 지낸 뒤 현장을 떠나 있었다. 이 감독은 “내가 여자농구에 대해 아는 게 뭐가 있나. 감독급 코치가 필요했기에 곧바로 선민이에게 전화했는데 처음엔 ‘오라버니가 무슨 여자농구냐?’며 장난치는 줄 알더라. 그래서 직접 찾아가 설명했더니 그제야 믿었다”고 했다.

이 감독은 “정 코치가 사실상 모든 걸 다 하면 저는 전술만 입힌다”고 했다. 이날도 정 코치가 직접 설명, 시범까지 보이며 팀 훈련을 주도했다. 이 감독은 “(정 코치가) 거의 혼자 다 하면서 살이 빠졌다”며 웃었다.

직전 시즌 최하위(6위)에 그쳤던 하나은행은 시즌 개막 미디어데이에서 압도적인 꼴찌 후보로 꼽혔다. 이 감독은 “직전 시즌 꼴찌였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숙소로 돌아오면서 생각해 보니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이 정도였나’ 싶더라. 아이들 가르치면서 ‘패배 의식’에 절어 있는 걸 고치려고 했는데 우리 현실을 그때 제대로 처음 느꼈다. 사람들 인식이 우리는 아예 ‘맨날 지는 팀’으로 돼 있더라”며 “가슴에 ‘하나’ 뒤에 ‘이름’이 박힌 유니폼 입고 뛰는 선수들이 창피하지 않게 프라이드를 가지고 싸워야 한다”고 했다.

하나은행은 17일 안방 부천체육관에서 우리은행과 시즌 개막전을 치른다. 이 감독은 “내 새끼들이 들어가서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저도 궁금하다”고 했다.


인천=임보미 기자 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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