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영화로 읊다] 〈118〉 죽음 앞에서 떠올린 시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룸 넥스트 도어’(2024년)에서 암으로 죽어가는 마사는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죽은 사람들(The Dead)’을 떠올린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죽음 앞에서 많이 떠올린 시는 도연명의 자만시(自挽詩·자신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였다(칼럼 29회 ‘나의 첫 번째 장례식’ 참조). 조선시대 문인 이단상(李端相·1628∼1669)은 죽음을 앞두고 다음 시를 썼다.
한시의 역사에서 도연명의 자만시는 죽음 주제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도연명의 자만시를 떠올리게 만드는 이 작품을 읽고 강백년(姜栢年·1603∼1681)은 목이 메는 슬픔을 이길 수 없어서 차운해서 시인을 애도하는 만시를 썼다고 했다(‘李副提學端相挽’, “見公自挽短律, 不勝哽咽, 臨挽追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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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 넥스트 도어’에서 암 투병 중인 마사(오른쪽)는 절친 잉그리드와 함께 병실에서 눈 내리는 정경을 바라보며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죽은 사람들’을 떠올린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에서 눈이 삶과 죽음을 연결시켜 준다면 시에서는 달빛이 그 역할을 했다. 시인은 죽기 직전 이 시를 다시 고쳐 썼다고 하는데, 자신이 애착했던 양주 영지동 빈 연못을 비추는 달빛만큼은 그대로 두었다. 이곳은 그가 정치적 격랑 속에서 서재(靜觀齋)를 짓고 학문에 전념했던 곳이었다. 시인은 삶의 기억과 죽음 뒤의 공허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듯하다.
시와 영화는 죽음을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우울과 무력감에 빠지기보다 죽음 속에서 발견하는 삶의 의미를 반추하고 있다. 죽음에 대한 수동적 수용과 능동적 자기 결정이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달빛과 눈은 죽음을 포용하는 상징이 되어 우리 마음에 깊이 각인된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