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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남의 분노를 ‘유해한 남성성’만으로 봐야 하는가

입력 | 2025-10-31 11:44:00

◇젊은 남성은 왜 분노하는가?/사이먼 제임스 코플런드 지음·송은혜 옮김/352쪽·1만9800원·바다출판사




2021년 12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한 시민단체 주최로 열린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남성 혐오 중단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오래전 수도권 지하철에 여성전용칸이 도입된 적이 있다. 혼잡한 지하철 안에서 성추행 같은 범죄가 자주 발생하자, 피해를 막기 위해 일부 객차에 여성들만 탈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여론은 굉장히 부정적이었다. 무엇보다 ‘지하철을 탄 남성들을 모두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한다’라는 지적이 많았다.

범죄를 막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 같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지 이해가 안 갔다. 이 제도는 워낙 여론도 나쁘고 실효성도 없어 결국 흐지부지 사라졌다. 하지만 ‘일부 남성’에겐 상처를 남겼고, 어떤 이에겐 ‘여성에 대한 반감’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세월이 상당히 지난 지금, 이 ‘일부 남성’은 일부가 아닌 상당한 규모까지 커졌다. 한데 이런 현상이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었던가 보다.

온라인에서의 여성 혐오, 극단주의, 데이트 폭력 등을 연구해 온 호주 사회학자가 이른바 온라인 ‘남초(男超)’ 커뮤니티에 들어가 요즘 시대의 실질적인 정치적·사회적 ‘현상’이 된 젊은 남성들의 분노를 분석했다. 젊은 남성의 이런 분노는 어디에서 왔고, 왜 모두의 문제가 됐을까.



저자는 이런 남성들을 열등감에 빠진 못난 남자로 간주하고, 그 원인을 단순하게 ‘유해(有害)한 남성성’의 틀에 맞춰 분석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유해한 남성성’이란 남성성 중 일부 ‘유해한’ 특질이 폭력, 혐오, 기타 문제 행동으로 이어진다고 보는 개념.

저자는 여성 혐오는 남성이 본래부터 가진 나쁜 속성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형성된 ‘병리적 현상’이기에 진단 자체가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만약 여성 혐오가 본래부터 남성 안에 내재한 속성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을 꾸짖거나 감옥에 가두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식의 접근은 문제 해결도 못 할뿐더러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남초 커뮤니티에 모여 여성을 적으로 돌리고, 자신들은 역차별당한다고 믿는 젊은 남성의 억울함에는 어느 정도의 진실과 더 깊은 구조적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그들은 평범하고 지루하기도 한 바로 옆집 남자와 다를 바 없는 개인이다. 그들 역시 우리처럼 그저 일상에서 살아남고 성공하기 위한 길을 모색하려 애쓸 뿐이다. …(비록 끔찍한 방식으로 기는 하지만) 점점 더 버거워지는 세상 속에서 생존을 추구하는 평범한 사람들인 것이다.”(1장 ‘젊은 남성, 사회의 폭탄이 되다’에서)

사실 이런 부류의 문제 제기는 상당히 어렵다. 본의와 다르게 오해받기 쉽기 때문이다. 이에 저자도 자신의 분석이 거친 방식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 젊은 남성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건 아니라고 강조한다. 공동체 안에서 발생하는 이런 폭력은 이미 우리 사회 구조 속에 깊숙이 내재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 도대체 세계적으로 만연해 가는 이 현상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저자는 소셜미디어 차단이나 잘못된 말과 행동을 그대로 돌려주는 ‘미러링’ 등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라고 말한다. 소셜미디어 차단은 남성들을 전보다 더 규제가 약한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하게 만들고, 새 플랫폼은 이전보다 더 극단적인 행태로 흐른다. 대신 남성들의 분노에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그들이 그렇게 느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문제가 발생한 실제 원인에 대해 함께 얘기하며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답답하긴 하지만 현실을 돌아보면 달리 다른 방법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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