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완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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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일을 상대로 한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외교전의 본 게임은 이제부터다. 관세 협상 막판까지 한국을 압박한 트럼프, 11년 만에 방한하는 시진핑, 강성 우파 다카이치까지 만만한 상대가 없다. 무엇보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5개월째에도 한미 한중 한일 관계 모두 불확실성의 안갯속에 있다.
한미는 팽팽한 관세 협상이 길어지면서 정작 동맹의 큰 그림을 그릴 청사진이 흐릿하다. 한중은 ‘안미경중은 끝났다’고 선언한 한국과 ‘미국 편에 서지 말라’는 중국의 요구 사이에 서 있다. 한일은 ‘과거사를 넘어 미래지향적 협력으로 가자’는 이시바 시절의 합의가 이어질지 기로에 있다. 미중일 외교에 드리운 어슴푸레함을 얼마나 걷어낼 수 있을지에 APEC 외교전의 성패가 달렸다.
대미 대중 대일 불확실성 걷어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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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북 정책도 모호하다. 트럼프가 비핵화 없는 핵 동결에 덜컥 합의해도 된다고 보는지, 어떤 북핵 구상이 있는지 분명치 않다. 한미는 한국이 우라늄 농축 권한 등을 더 많이 갖기로 공감했다고 한다. 향후 원자력 협정 개정을 협의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경계심을 높일 국내 일각의 핵무장론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트럼프가 북핵을 용인하고 핵우산 강화에도 미온적이라면 불필요한 핵무장 여론을 자극할 수 있다. 이번 회담이 비핵화·북핵 억지 현안에서도 긴밀한 공조를 확인하는 자리가 돼야 하는 이유다.
2016년 사드 보복으로 냉각된 한중 관계는 윤석열 정부를 거치며 양국 갈등을 조정할 외교가 실종됐다. 시진핑과의 회담에서 이를 되살리는 게 1차 과제다. 10년 가까이 암묵적으로 이어지며 한중 협력의 걸림돌이 된 한한령(한류 금지령) 해결도 필요하다.
한미 동맹을 중심으로 중국과도 척지지 않겠다는 전략이 ‘미국의 대중 억제에 동참하지 말라’는 중국의 요구와 어디서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미중이 관세 전쟁 휴전을 시사했지만 첨단기술·안보를 둘러싼 패권 경쟁은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다. 한국의 미래가 달린 산업에서 한화오션처럼 미국과 협력하는 기업을 제재하는 일이 재발하면 안 된다고 분명히 해야 한다. 한미 군사력 견제와 무관치 않은 중국의 서해 구조물 알박기도 해양주권 차원에서 수용할 수 없다는 마지노선을 제시해야 한다. 이를 두루뭉술 넘어가면 이 대통령의 말처럼 미중 두 개의 맷돌 사이에 끼어 이도 저도 못 하는 처지가 될 수 있다.
李 정부 5년 대외 전략의 분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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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은 국격 상승의 기회이지만 미중일과의 연쇄 회담은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다. 이재명 정부 5년 대외 전략의 향방을 결정할 분수령이기도 하다. 이를 위한 ‘외교 주춧돌’을 놓을 역량이 있는지 곧 판가름 날 것이다.
윤완준 논설위원 zeitung@donga.com